2020년부터 2022년까지 참여했던 글쓰기 모임에서는 매주 한 편씩 짧은 소설―이라고 주장하지만 대체로 정체불명의 글―을 썼다. 분량은 보통 A4용지 서너 장 정도였고, 많을 때는 다섯 장 정도까지 쓴 적도 가끔 있었다. 회사에 다니며 그 정도 분량을 매주 썼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와 생산력이었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시간이 잠시라도 나면 무조건 노트북을 펼치고 소설을 쓰곤 했다. 출근하기 전에, 외근을 나가서 잠시 시간이 비었을 때, 퇴근 후에, 잠들기 전에, 그리고 주말에.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글쓰기를 향한 열정이 차고 넘치던 시절이다.
그때는 소설이 무엇인지, 소설이 어떤 모양새를 가져야 하는지도 전혀 모른 채 그냥 무작정 쓰고 싶은 걸 썼다. 무식해서 용감했다고나 할까.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시간과 경험이 그래도 어느 정도 쌓이며 최소한의 감은 잡은 것 아닌가 생각은 든다. 소설이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써야 소설이겠구나, 정도의 감. 달리 말하면 소설 쓰기의 이론적 지식을 조금 습득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론을 익혔더니―역설적이게도―요즘 소설 쓰기가 더 어렵다. 분명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쓰는 법을 알았는데 왜 어렵냐고. 실은 누구보다 내가 그렇게 묻고 싶다. 이론을 익혔는데 도대체 왜 써먹질 못하냐고.
예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난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보는 것뿐만 아니라 하는 것도 좋아해서 꽤 오랜 기간 사회인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선 여러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우선 이론적 지식이 필요하다. 어떻게 몸을 움직여야 빠르고 정확하게 공을 던지고, 강하게 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럼 이러한 이론적 지식을 머리로 완벽하게 습득하면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강하고 빠른 공을 던지기 위한 방법―하체를 이용해 체중을 허리부터 어깨, 그리고 팔꿈치를 거쳐 손목까지 부드럽고 빠르게 전달하는 역학적 흐름―을 이론적으로 완벽히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강하고 빠른 공을 던질 수는 없다. 정작 몸이 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론과 함께 필요한 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다.
갑자기 야구 얘기를 꺼낸 건 소설 쓰기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다. 작법 이론을 아무리 빠삭하게 알아도 그것을 이야기의 적재적소에 알맞게 적용해 풀어낼 수 없다면 이론은 그저 이론으로만 기능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습득한 이론을 내 머릿속 영감의 조각들과 결합해 흰 공백 위에 눈에 보이는 글로 쓸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처음 소설을 썼을 당시에는 이론도 몰랐고, 글 쓰는 기술이랄 것도 없었다. 정말 무식하게, 무턱대고 썼다. 그에 비해 지금은 이론을 조금이나마 익혔다. 강의도 들었고, 작법서도 읽어보았으며,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도 제법 봤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가 가지는 특성이 조금씩 눈에 보였다. 앞서 감을 잡았다는 건 이런 의미였다. 그런데 기술은 늘지 않았다. 4년 전과 비교해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니 전보다 눈은 높아졌지만 실제로 쓰는 소설은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다. 마음에 들 리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요즘 소설 쓰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든 이유이다.
그렇다면 소설 쓰는 기술은 과연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아마도 정답은 없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그리고 많은 이들이 말하는―방법은, 계속 쓰는 것이다. 소설이 안 써지는데 계속 쓰라고 하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방법은 없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뒤죽박죽 엉망진창이어도 멈추지 말고 꾸준히 써야 한다. 쓰는 것도 운동과 다르지 않아 머리로 이해한 이론을 지난한 연습의 과정을 거쳐 몸에 자연스럽게 체득되도록 해야 한다. 쓰는 과정에서의 고통과 어려움도 익숙해져야만 한다.
뛰어난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타고난 재능이 중요하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소설도 예술이기에 마찬가지다. 소설 잘 쓰는 사람은 딱히 이론을 몰라도, 기술이 없어도 멋진 소설을 척척 써낸다. 내가 만났던 소설 잘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난 그런 타고난 재능은 없다.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공부하고 연습해야 한다. 재능이 없는 걸 억울해하며 투정 부려봐도 아무 소용없다.
그러니 난 거북이가 되어야 한다. 타고난 뒷다리로 껑충껑충 뛰어가는 토끼를 부러워하지 말고 멈추지 않고 꾸준히 걸어가야 한다. 경주에서는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하는 게 중요하지만, 지금 나에겐 누구를 앞서 통과한다거나 기록을 세우며 빨리 통과하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그럴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내게 중요한 건 그저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일지라도 끝까지 걸어가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는 결승선이라도 통과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_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