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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얼 10시간전

42_겨울이 다가왔어요



지난주까지만 해도 기온이 따듯해 한낮에는 가벼운 옷차림으로도 충분했는데, 이번 주부터 날씨가 급변해 겨울이 불쑥 다가온 느낌이다. 왜 이렇게 갑자기 추워졌냐고 나도 모르게 엄살을 피웠는데, 생각해 보면 11월도 벌써 막바지에 다다랐으니 쌀쌀해진 날씨가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다. 계절은 자신만의 속도로 때가 되어 자연스레 바뀌었을 뿐이다.


피부에 닿은 차가운 공기는 문득 작년 이맘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작년 11월 말, 난 회사 대표님께 퇴사하고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려 한다는 말을 했다. 12월까지는 회사에 다닐 생각이어서 조금 이른 감도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퇴사 한 달 전에는 알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말하기 전까지 많은 시간을 혼자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당당하게 말해야 하는데 괜히 겁먹어서 우물쭈물하면 어쩌나부터 시작해, 만약 대표님이 냉랭한 반응을 보이거나 퇴사를 반대하면 소심한 마음에 유야무야 없던 일로 해버리지 않을까 걱정까지. 잔뜩 긴장한 채 대표님을 마주하고 마침내 내 계획을 말했을 때, 내 걱정과 두려움이 무색하게도 대표님은 놀라워하고 반가워하며 나의 결정을 지지해 주셨다. 내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대표님은 왜 이제야 말했냐며 너무 멋지다고, 분명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애초부터 내 결정에 자신이 있었다면 대표님 반응이 어떠하든 걱정할 필요도 없었을 테지만, 아마도 당시에 난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과연 옳은 결정은 한 건지 확신도 부족했고,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했다. 그 어떤 말보다 넌 틀리지 않았다는 절대적인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를 간절히 듣고 싶어 했다. 물론 대표님께 그러한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저 “알겠어요.”라는 한마디만 들었어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선 됐다고 안도했을 것이다. 그런데―적어도 내가 느끼기엔―진심 어린 투로 내 결정을 응원해 주는 말씀을 해주셨으니 나에겐 정말 큰 위안과 힘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난 정말 감사하게도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내 결정을 진정으로 기뻐하고 환영하는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은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곳이자 어떻게 보면 나를 소설 쓰는 사람이 되게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서점의 사장님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부쩍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며 그와 난 식사 장소로 이동해 제철 방어회를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았고, 난 그에게 퇴사를 결정한 사실을 바로 오늘 대표님께 알렸다고 말했다. 내가 전업 작가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전부터 알고 있었던 그는―정말 문자 그대로―두 팔 벌려 나의 결정을 환영해 줬다. 자기 일인 것처럼 크게 기뻐하는 모습에 처음엔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누구보다 진심인 걸 알았기에 그의 말과 표정, 행동은 나에게 온전한 응원으로 다가왔다.


사실, 그날 이후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결정을 얘기했을 때 걱정한다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그렇게 생각하진 않지만―그저 의례적으로 축하해 주고 응원해 줬을 수도 있다. 설사 그랬을지라도 그 말들은 당시 나에게 충분한 힘이 되었고, 불확실한 가운데서도 내 결정을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나의 모습은 겨울이 이제 막 찾아왔던 1년 전에 내가 들었던 그 모든 말, 축하한다고, 멋지다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내게 용기와 믿음을 준 온기 가득했던 말들로부터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고, 난 다행히도 아직 전업 작가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1년 전 난 많은 목표를 세웠는데 그중엔 이룬 것도 있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도 있다. 올해 나에겐 예상치 못한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고, 어떤 일에 있어서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받기도 했다. 전업 작가를 시작하면서 난 주변 사람들에게―심지어 아내에게도―우선 1년만 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전혀 마음에 없는 소리였다. 그들이 괜히 불안해할까 봐 걱정돼서 했던 거짓말이었다. 난 앞으로도 계속해서 소설을 쓸 것이고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은 내년, 내후년, 혹은 언젠가는 이루고야 말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주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잘 모르겠다. 부디 바라는 건, 1년 전 그때처럼 나를 믿어주고 온기 어린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난 불안과 의심 속에서도 내 품 안에 소중히 간직될 그 온기에서 계속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계절은 어느새 겨울로 넘어가고 있다. 난 계절 중에서 겨울을 좋아한다. 물론 엄혹한 추위는 견디기 힘들 때도 있지만, 그렇기에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 더 소중해지는 겨울이 좋다. 하얗게 세상을 덮는 눈도, 따듯한 이불속에서 까먹는 귤도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리고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한 해의 끝과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이 모두 겨울에 있기 때문이다. 내게 겨울은 끝나고 정리되는 계절이자,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계절이다. 끝이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된다는 건 왠지 모르게 뭉클하고 감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행스럽다. 그래서 난 겨울을 좋아하고, 그렇게 겨울을 맞이한다.



_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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