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3_소설을 쓰기 위한 믿음

by 주얼



소설을 쓰고 나면 가장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게 바로 내가 쓴 소설이, 내가 쓴 문장이 과연 읽는 사람에게 공감될 수 있는가이다. 내 소설들은 보통 너무나 사적이고 불안정한 나의 기억과 감정이 주요 소재가 되곤 하기에(특히 초기 소설들이) 독자들이 공감하지 못하거나 심할 경우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곤 한다. 물론 이런 걱정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소설 쓰는 실력이 아직 부족해서일 것이다. 좋은 소설을 쓴다는 건 수많은 독자에게 다가가 그들 각자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잘 쓴다는 것일 테니.


얼마 전 작업 공간을 지원해 주는 문화재단이 평소 교류하던 지역 예술가들을 상대로 특별한 시간을 가져 보자는 제안을 했다. 내 소설 속 문장들을 예술가들과 함께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는 거였다. 이전에 작업실 오픈 스튜디오 행사 때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형태의 행사를 해보기도 했고, 나라는 작가와 내 소설을 알릴 기회였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날짜와 시간이 바로 정해졌고, 나는 준비를 시작했다.


행사에서 나눌 문장을 고르고 전시 형태를 기획하고 있으려니 어김없이 걱정과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전통 음악을 공연하고, 시각 예술과 연기를 하고, 극을 연출하는 등 각자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동료 예술가들에게 내 문장이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면 어쩌지, 그들에게 내 문장이 너무 나이브하거나 유치하진 않을까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안한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행사 당일이 되니 걱정은 더 커지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작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나둘 동료 예술가들이 행사 장소에 도착했고, 그들이 나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모습을 마주하니 행사고 뭐고 어딘가로 냅다 도망쳐버리고도 싶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럴 순 없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고, 난 최대한 차분한 척하며 준비한 말을 풀어놓았다. 우선 간략한 내 소개를 했고, 벽에 전시된 소설 속 문장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중 자신의 기억이나 경험과 연결된 문장을 골라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성가신 일이었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장을 일일이 살펴보는 것도 귀찮은데, 그중 하나를 골라 그에 관한 개인적인 얘기까지 해달라 했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난 말을 마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내 걱정과는 다르게-그들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주어진 시간 동안 한 문장 한 문장 진지하게 읽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뒤 한 사람씩 고른 문장과 관련된 자기 얘기를 가감 없이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누군가는 언젠가 다가올 생의 마지막 순간이 아름답고도 마법 같은 봄날의 순간을 묘사한 문장(「멋진 하루」 중, 『여름의 한가운데』 p.72)처럼 평화로웠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고, 누군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것에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선택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문장(「순간을 믿어요」 중, 『당신의 판타지아』 p.198)이 응원으로 다가와 자신의 선택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해줬다. 또 다른 누군가는 평소 심리적으로 힘들 때 자기도 모르게 청소에 집착하곤 했는데 의식처럼 다림질을 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인물을 그린 문장(「경수의 다림질」 중, 『당신의 판타지아』 p.62)을 보고 본인에게도 청소가 그런 의식의 일종이었던 것 같다며 소중함을 몰랐던 걸 알게 해 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활동 분야나 성취의 크기와는 관계없이 여기에 모인 모두가 비슷한 형태와 무게의 걱정과 고민을 안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줬다. 그리고 그러한 걱정과 고민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자신을 믿으며 단단한 마음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 또한 알려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며 갖게 되는 불안과 의심을 솔직하게 공유했고, 그에 굴하지 않는 신념을 한 번 더 함께 확인하고 다짐했다. 그 순간은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 경이롭고도 뭉클한 순간이었다.




내 소설이 독자들에게 과연 어떻게 다가갈까, 란 걱정은 아마 내가 소설을 쓰는 이상 절대 끝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내 소설이 모든 독자에게 유의미한 울림을 전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비난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한심하게 여길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믿고 쓰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팍팍하고 힘겨울지 모를 일상 속에서 작지만 다정한 위로의 순간을 원한다는 걸. 선명히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자신을 오롯이 믿으며 어떻게든 나아가려 한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내 소설이 그러한 누군가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는 위로와 응원을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 가능성이 비록 높지 않더라도 난 믿을 수밖에 없다. 아니, 믿는다. 믿지 못한다면 난 아무것도 쓸 수 없다.



_2024.11.28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2_겨울이 다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