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한 서점에서 내가 호스트를 맡아 4주간 진행했던 소설 쓰기 클래스가 며칠 전 네 번째 모임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과연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고 이끌만한 역량이 될까 고민도 했었지만, 흔하게 오지 않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용기를 내 수락했다. 과감하게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주저하고 겁내기만 하며 영영 시도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나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큰 이유였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컸는데, 다행히도 클래스는 큰 문제없이 무사히 종료되었다. 긴장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기도 했지만, 클래스가 마지막까지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건 다른 무엇보다 참여한 분들의 성실함과 진정성, 그리고 소설을 향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소설로 쓰고 싶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이미 갖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어떻게 서사를 이끌어가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들 모두 인생 처음으로 쓴 소설이었기에 기술적인 면에서 미숙하고 서투른 점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자기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소설에 담아내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내심 많이 놀랐고, 적지 않게 감명을 받았다.
마지막 모임을 마치는 날, 나는 그들에게 소설을 쓰는 동안 어떠한 느낌을 받았는지 물었다. 각자가 느꼈던 여러 감상을 나눴는데, 그중에서 모두가 공통되게 언급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소설을 쓰는 동안 재미있었다는 것. 고민도 많았고, 힘들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써나가는 시간이 정말로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나니 내 기억 속 까마득히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처음 소설을 썼던 시기가 떠올랐다.
선명하게 기억난다. 매주 한 편씩 짧은 소설을 쓰던 그때가. 그때 난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 모임에서 뭣도 모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소설을 쓰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설레고 재밌는 시간이 되었다. 마감에 쫓겨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할 땐 괴롭기도 했지만, 마침내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내 기억 속에서 그 괴로움은 어느새 나도 모르게 즐거움으로 치환되어 있곤 했다.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시간. 당시 소설을 쓰는 시간은 내게 그러했고, 그랬기에 난 계속 소설을 썼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어떠한지 자문해 본다. 난 지금도 소설을 쓰는 동안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렇다,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긴 어려울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쓰는 시간은 내게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독립출판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래서 매년 신작을 발표하면서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는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만을 느끼며 소설을 쓰지 않는다. 아니, 쓸 수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멋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을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읽힐지만을 고민하고 신경 쓰며 소설을 쓴다. 그 시간은 종종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단단하게 옭아매 숨 막히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 시간을 두려워할지언정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이상 감내해야만 하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간이란 걸 잘 안다. 물론 예전처럼 순수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사라진다는 건 분명 아쉽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믿어보려 한다. 내가 과거로부터 느끼는 아쉬움의 크기만큼 현재의 난 성장한 거라고. 아쉬움을 흘려보내고 내가 쌓아가는 고민과 불안의 높이만큼 난 더 높이 그리고 멀리 나아갈 거라고.
초심(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에 먹은 마음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품었던 다짐을 말할 때 사용되곤 한다. 소설 쓰기 클래스 마지막 모임에서 참여자들에게 들었던 소설 쓰는 동안 재밌었다는 말을 가만히 되뇌다 문득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고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던 당시 나의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그러고 보면 재밌다는 건, 즐겁다는 건 단지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감정이지 계속 지켜나갈 나의 다짐은 아니었다. 내가 그때 했던 다짐은, 내 마음속에 새겼던 초심은 바로 ‘꾸준히 소설을 쓰자’였다. 내 첫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렇게 내일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과 같이 꾸준하게 소설을 쓰면서 말이다.
내가 지금 소설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소설을 쓰는 시간 동안 느끼는 감정은 분명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4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 변화가 옳은지 그른지는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아쉬울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도 여긴다. 하지만 내가 4년 전 했던 다짐은, 나의 초심은 아직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초심을 간직한다는 게 꼭 좋기만 한 건지는 잘 모르겠고,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유연하게 변하는 게 더 쓸모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적어도 아직 내 초심을 바꾸고 싶지 않다. 지금껏 꾸준히 소설을 써왔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고, 그래서 더없이 기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오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결연하게 견뎌내며 꾸준하게. 그렇게 소설을 쓰고 싶다.
_2024.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