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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_모두 대단하다

by 주얼



날씨가 추워지면서 겪는 가장 고역 중 하나는 바로 아침에 잠을 깨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일이다. 밤새 체온으로 따듯하게 데워진 이불속에서 빠져나오는 건 노릇노릇 바삭한 파전을 앞에 두고 시원한 막걸리를 안 마시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계속 일어나는 시각이 늦어지고 있다. 매일 아침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을 반사적으로 끄고 딱 5분 만을 다짐하며 이불속으로 다시 파고드는 순간 10분, 20분, 심지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원래 일어나려 했던 시각보다 한참 지난 걸 확인한 후 한숨과 함께 겨우겨우 이불속에서 나오는 아침이 요즘 반복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작년까지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에 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 생활할 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신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일 아침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지하철에 가까스로 몸을 구겨 넣어 사무실에 출근했고, 잘 알지도 못하고 하기도 싫은 업무를 과정이 어찌 됐든 겨우겨우 해냈다.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들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웃으며 머리를 조아리기까지 했다. 그땐 그저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참아냈다.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여기며 견뎌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했다.


퇴사 이후 전업 작가를 시작하면서 나에겐 엄청난 자유가 주어졌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고, 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된다. 적어도 아직은 업무적인 인간관계로 힘든 적도 없다. 단지 수익이 형편없이 줄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일반 직장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나날의 연속이다. 이렇게 늘어난 여유와 자유 속에서 마냥 편하게만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끝없이 흐트러지고 늘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 스스로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만의 루틴과 시스템, 달리 말하면 규칙과 기준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기상 시간, 작업량, 운동, 외부 일정, 휴식 등을 정해진 틀대로 맞추려 노력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떤 건 어느 정도 틀이 잡혔고, 어떤 건 전업 작가 생활 1년을 앞둔 지금도 틀을 잡아나가는 중이다.


사실, 틀을 잡은 것보다는―기상 시간을 포함해서―아직 제대로 된 틀을 못 잡은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글 쓰는 시간이나 분량도 불규칙하고 식사 시간, 휴식 시간, 수면 시간 등 기본적인 생활 리듬도 들쑥날쑥하다. 스스로 강제성이 있는 틀을 만들어 삶을 통제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회사에 다닐 땐 강제적인 규칙이 있고 싫어도 그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혼자가 된 지금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고 챙겨주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 나를 만들어가야 한다. 어렵기도 하고 때때로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좋아서 시작한 삶인데.




며칠 전 대학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1년에 겨우 한두 번 보는 동기 및 선후배들과 지난 12월 초 송년회 겸 만나는 모임에 사정이 있어 불참했는데, 감사하게도 그때 못 들었던 내 안부도 물을 겸 겸사겸사 전화한 거였다. 서로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다 친구가 물었다. 전업 작가 생활은 어떠냐고. 이제 1년 가까이 지났는데 생각한 대로 잘 되고 있냐고.


전화로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기도 하고 조금 귀찮기도 해서 난 그냥 그럭저럭 하고 있다고 얼버무리듯 답해버렸다. 내 대답에 친구는 아마도 내가 그다지 녹록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네가 멋지다고. 대단하다고. 난 친구의 말을 얼른 부정했다. 아니라고. 정말 대단한 건 너라고. 일주일에 5일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다니, 그게 정말 어렵고 힘든 거라고. 다시 하라면 난 못한다고.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늘어난 자유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허덕거리는 것보다는 참고 견디며 회사 생활을 하는 게 훨씬 더 어렵고 대단한 일이다. 나도 해봤기에 안다. 내 말에 친구는 싱겁게 웃으며 회사 생활이 뭐 다 그렇지,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원하던 일을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고 주도적으로 하는 거 보면 부러워. 직장인 대부분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른 채 그저 타성에 젖어 일하는데, 넌 스스로 원하는 길을 걷고 있잖아. 그러니 대단한 거 맞아. 그렇게 하는 거 정말 어려운 거거든.”


어쩌면 친구의 말도, 내 말도 모두 맞을지 모른다. 어디에서 무얼 어떻게 하든 우리는 이미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도, 똑같은 일상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도 모두 대단하다. 그렇다고 스스로 믿고, 그렇다고 상대방을 인정해 주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대단해질 수 있다. 나, 그대, 우리 모두.



_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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