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힘든 것이 아니어서 위로가 되어도
방공호가 필요한 날
얼마 만에 저녁회식이었을까. 코비드로 조심스러운 분위기에도 용기를 내 과 전체 회식을 제안하셨다는 과장님의 오픈 멘트만큼이나, 회사사람들과 저녁을 먹은 지가 까마득하다. 코비드 때문이 아니라도 회식을 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야근을 해야 할 상황이니 회식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소주라도 한잔 해버릴까. 겨우 한두 잔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르기도, 차를 두고 내일 아침 복잡한 출근길에 택시를 타기도 귀찮아 그냥 접었다. 술 한잔 안 먹고 내내 안주로 배만 가득 채운 덕에 부쩍 쌀쌀해진 밤기운에도 추운 줄 모르겠는 건 다행인 건가.
매일 열심히 검토해도 시간은 늘 모자라고, 밀려드는 일을 감당하기가 버겁다. 나의 능력치를 벗어난 듯 하니 나의 일처리에 직결되어 영향을 받을 누군가에게도 죄책감이 든다. 20년 직장생활에 이렇게 출근이 무서울 때가 있었을까.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는 농담 같은 진담이, 참으로 진심이다. 빨리 시간이 흘러 어떻게든 해결되었으면 좋겠다가도, 오늘도 별 소득 없이 하루가 지나버리자 이리도 시간이 야속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밤중에 깨어나 화장실을 다녀와서는 출근해서 할 일을 생각하며 잠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어 수면유도제를 샀다는 동료, 우리는 그것은 전립선의 문제라고 유명가수가 광고하는 건강기능식품을 사 먹는 걸로 결론짓고 웃프게 깔깔댔다. 과원들 모두 힘들고 막막한 심정이라 조금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나는 또 찾아올 내일이 두렵다.
모자란 시간을 붙들고 싶다.
내일도 오늘 같지 말아야 하는데..
아침아 오지 말어라.
방공호라도 있다면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지는 밤이다...
......
들어와요 들어와요
초라하지만 여기만은 안전해요
들어와요 어서 들어와요
내 마지막 향기는
그대 향해 있으니
나는 깨어있을 거예요
매일 밤 그대 곤히 잠들 때까지
봄이 오면 함께 떠나요
모든 슬픔 여기 가둬두고서
모든 두려움 다 떨쳐버리고
......
9와 숫자들 [방공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