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어젯밤에는 번쩍번쩍 번개와 함께 장대비도 쏟아지더니 종일토록 쏟아진다. 녹음이 채 짙어지기도 전에 요 며칠간 마치 한여름같더니 비 덕분에 기온은 좀 내려가는가보다.
창밖에 단풍나무 아래 세수대야만한 물웅덩이 위로 빗줄기는 쉼없이 원을 그린다. 이따금씩 바람이 휘몰아쳐 단풍잎파리들이 머금었던 빗물을 후두둑 떨어뜨리기도 한다. 때로 저 빗줄기에 우산 없이 흠뻑 젖어보고 싶은데 그거 하나를 해보지 못했지. 일부러 저 빗속에 뛰어드는 것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까봐 말이다. 저녁에 독서실에 나갈 때에도 앞머리를 고데기로 마는 데 한참이나 시간을 들이는 딸에게 아무도 네 앞머리에 신경쓰지 않으니 그대로 나가거라 나무라면서도, 정작 내가 비를 맞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을 그 타인들을 의식하며 나는 그 작은 용기조차 내지 못하다니. 코로나 시국에 감기라도 걸리면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니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한들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곳 브런치에 띄엄띄엄이나마 부족한 글을 올리기 시작하고서도,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 역시 다른 이들을 의식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몰랐으면 싶고, 그저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그 어느 하나가 끄적거리고 있겠거니 생각하길 바라며 말이다.
그래도 쉼없이 열심히 쓰고 또 써야 글이 좀 늘 것이며, 글이 나아지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내 글을 봐달라 말 할 용기가 좀 날 것이만서도... 나는 여전히 게으르며, 여전히 수줍고, 그리하여 쓰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며칠전 채널을 돌리다 유희열이 진행하는 '대화의 희열' 시즌3가 시작된 것을 보았다. 작가 황석영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팔순이 가까이 되도록 여전히 글을 쓰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 너무도 당연한 천상 작가의 이야기들이었다. 글을 어떻게 쓰십니까... 라는 질문에 늘 '궁둥이로 씁니다'라고 대답하신다 한다. 무슨 한줄기 영감을 받아 빛과같이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궁둥이 붙이고 시간을 들여 오래도록 써야 한다는 글노동.... 그래서 좋은 글을 쓰고싶어하는 글린이(요새 어떤 분야에 입문한 초보들을 그 분야의 어린이라는 의미로 '~린이'라고 하는 모양이라 따라해봤다)들에게는 희망이기도, 또 아무리 써도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니 어떤 면에서는 절망이기도 하는 말...
그리 공도 들이지 않고 안써진다며 포기를 반복하는 나는 또 민망하였다.
그래 궁둥이로 써야하는 것을 그새 잊은것이냐. 타고난 이도 궁둥이의 힘이 몹시도 필요한것을.
포기가 빠른 것은 욕심이 없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곳 브런치에서 나 욕심을 부려보련다.
그러니 이제부터 꼭 궁둥이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