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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채물감 May 18. 2021

궁둥이로 쓰겠습니다!

하루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다. 어젯밤에는 번쩍번쩍 번개와 함께 장대비도 쏟아지더니 종일토록 쏟아다. 녹음이 채 짙어지기도 전에 요 며칠간 마치 한여름같더니 비 덕분에 기온은 좀 내려가는가보다.  

창밖에 단풍나무 아래 세수대야만한 물웅덩이 위로 빗줄기는 쉼없이 원을 그린다. 이따금씩 바람이 휘몰아쳐 단풍잎파리들이 머금었던 빗물을 후두둑 떨어뜨리기도 한다. 때로 저 빗줄기에 우산 없이 흠뻑 젖어보고 싶은데 그거 하나를 해보지 못했지. 일부러 저 빗속에 뛰어드는 것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보일까봐 말이다. 저녁에 독서실에 나갈 때에도 앞머리를 고데기로 마는 데 한참이나 시간을 들이는 딸에게 아무도 네 앞머리에 신경쓰지 않으니 그대로 나가거라 나무라면서도, 정작 내가 비를 맞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을 그 타인들을 의식하며 나는 그 작은 용기조차 내지 못하다니. 코로나 시국에 감기라도 걸리면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니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 핑계를 대본다 한들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 곳 브런치에 띄엄띄엄이나마 부족한 글을 올리기 시작하고서도,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더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 역시 다른 이들을 의식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걸 몰랐으면 싶고, 그저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그 어느 하나가 끄적거리고 있겠거니 생각하길 바라며 말이다.


그래도 쉼없이 열심히 쓰고 또 써야 글이 좀 늘 것이며, 글이 나아지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내 글을 봐달라 말 할 용기가 좀 날 것이만서도... 나는 여전히 게으르며, 여전히 수줍고, 그리하여 쓰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며칠전 채널을 돌리다 유희열이 진행하는 '대화의 희열' 시즌3가 시작된 것을 보았다. 작가 황석영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팔순이 가까이 되도록 여전히 글을 쓰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 너무도 당연한 천상 작가의 이야기들이었다. 글을 어떻게 쓰십니까... 라는 질문에 늘 '궁둥이로 씁니다'라고 대답하신다 한다. 무슨 한줄기 영감을 받아 빛과같이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궁둥이 붙이고 시간을 들여 오래도록 써야 한다는 글노동.... 그래서 좋은 글을 쓰고싶어하는 글린이(요새 어떤 분야에 입문한 초보들을 그 분야의 어린이라는 의미로 '~린이'라고 하는 모양이라 따라해봤다)들에게는 희망이기도, 또 아무리 써도 그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니 어떤 면에서는 절망이기도 하는 말...

그리 공도 들이지 않고 안써진다며 포기를 반복하는 나민망하였다.

그래 궁둥이로 써야하는 것을 그새 잊은것이냐. 타고난 이도 궁둥이의 힘이 몹시도 필요한것을.

포기가 빠른 것은 욕심이 없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이곳 브런치에서 나 욕심을 부려보련다.

그러니 이제부터 꼭 궁둥이로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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