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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채물감 May 05. 2020

어김없이 돋아나는 봄

너무 늦은 깨달음

봄을 맞으면서 가지치기한 해피트리에 새순이 돋아났다.

이 해피트리는 약 10년 전 남편이 회사에서 다 죽어가는 것을 일삼아 가지고 들어온 것이다. 잎이 다 말라버린 그 무거운 화분을 힘들게 집까지 들고 오다니 참으로 이해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 집으로 들어온 나무는 조금씩 생기를 찾았고 싱그러운 잎들이 가득가득 피어났다. 그리고 10년째 무럭무럭 자라서 거실 천장에까지 잎을 뻗어나갔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것을 알고는 천정에 닿을락말락 높이까지만 키를 세우고 옆으로 옆으로 풍성해지는 것이었다. 몇 년 전 시어머니는 천정까지 자라난 나무를 보시고 집안에 가장보다 더 큰 나무가 있으면 안되는 거라며 내다버리라 하시기도 했다.


그 튼튼한 나무가 이번 겨울을 지내면서 세 갈래의 가지에서 뻗어나온 작은 가지들과 잎사귀들 탓에 몹시도 무거워 보이더니, 가지가 곧 찢겨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가지를 좀 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가지를 싹둑 잘라버렸다. ‘이거 죽으면 너 때문이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황당함에 아니아니 기다려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나무 키우기를 좋아하는 남편은 나무가 자랄 때마다 손수 분갈이를 다하고  틈날때마다 화분들 사이에 앉아 나무들을 지긋이 바라보 사람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큰 해피트리가 부담이 되었는지 물을 주지 말아버릴까 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큰 화분을 찾아 분갈이 하기도 힘들어서였을까. 10년을 키운 나무한테 참 무정한 말이었다. 식물을 키우는데는 재능도 별 관심도 없는 나로서는 집에 있는 그 많은 화분들의 처분 권한이 1도 없다고 봐야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는 나무 앞에서 일부러 물을 안준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나는 버럭했었다. 그랬던 내가 가지치기를 해보자니 남편은 아주 반가웠던 모양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전지가위를 챙겨나왔고, 해피트리는 단 몇초만에 앙상해졌다. 가지 하나에 새순이 돋아난 곳이 있었는데 그 위로 싹둑 잘려나갔다.


새순 하나에 희망을 걸어보았다. 한 가지에 그렇게 새순이 나왔으니, 다른 두 가지에도 하나씩은 순이 돋아나길 기대하면서, 나는 가지를 친 뒤로 나무에게 매일매일 힘을 내라고 말을 걸어주었다. 이렇게 나무에게 말을 거는 일은 나도 처음이다. 내가 가지를 치자고 했던 것이 줄곧 마음에 걸렸던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 초록색 점이 몇 군데 비치기 시작했다. 어쩜 정말 대단하구나 칭찬도 잊지 않고 해주었다. 그리고는 일주일이 지나자 쏘옥 순이 올라왔다. 보름이 지난 지금은 벌써 30센티미터 가까이 자라나 있다. 새로 돋아난 잎사귀들은 윤기도 반질반질하다. 금방이라도 예전처럼 풍성해질 것만 같다. 진심 대단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겨울마다 거리의 가로수들의 가지가 무자비하게 잘려나가도 봄이면 다시 새순이 돋아나 무성하게 잎을 피우지 않던가. 우리집 해피트리도 그렇게 새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다.


나무 하나도 스스로 제 살길을 찾아 부지런히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니 대견하고 뿌듯하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며 대견해하는 것만큼 나무도 나를 보며 흐뭇해해 주기를 바란다.


생각해 보니 나무는 하루종일 내 옆에 우뚝 서서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이 집에 이사를 오고 남편이 하나둘씩 들여온 화분들이 거실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처음엔 나무들의 키가 책상보다 낮았으나 이제는 키가 훌쩍들 커서 창문밖 풍경을 거의 다 가릴 정도이다. 50센티정도밖에 안하던 벤자민, 크로톤도 나와 시야를 같이 하고 있다. 나무들은 10년동안 그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며 단단해지고 있었고, 내가 관심을 주지 않고 있는 동안에도 내 옆에서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매일 아침 분주하게 출근준비를 하고 피곤한 밤 소파에 찌그러져 있을 때마다 어쩌면 나무들은 나를 측은하게 바라봐주고 힘내라 응원을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이제서야 나무들을 이렇게 가까이 느끼다니. 내가 알지 못했던 소중한 존재가 바로 옆에 있었음을 깨달은 순간이다. 꼬리를 흔들어 반기거나 품속에 파고드는 반려동물만이 가족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나무는 말없이 그 자리에 가만히 곁에 있어주었다.

단단히 버티고 있어주어 고맙구나. 이제 내가 더 단단해질 차례인가 보다. 나도 힘을 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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