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채물감 May 07. 2020

그 해 봄을 추억하며

봄까치꽃으로 전하는 소식

바깥 봄바람이 살랑살랑하여 오늘은 오전부터 일찍 산책을 나갔다. 집앞 공원은 제법 초록이 짙어졌고, 이팝나무가 소복하게 흰꽃을 피웠다. 조선시대 이씨 임금이 내리는 쌀밥을 이밥이라 하였는데 흰 쌀밥을 닮은 꽃모양새로 이팝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절기중 입하 전후에 꽃이 피는 나무라 해서 입하나무라 부르던 것이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입하에 쌀밥이 피어나는 나무라고 나 혼자 결론을 지어본다.

 

복슬복슬한 이팝나무 아래에는 파란 풀꽃들이 많이도 피어있다. 큰개불알풀꽃이다. 새끼손톱만치 자그맣고 파란 그 귀여운 꽃에 어찌 이런 민망한 이름이 붙었을까. 이 꽃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2015년 봄이었다. 당시의 내 상사 J는 걷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튼튼한 다리의 소유자였다.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 식구들이 같이 점심을 먹는 날이고 그 때마다 우리는 일찍 식사를 마치고 근처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거나, 보통은 차를 타고 움직이는 거리의 식당까지 20여분 열심히 걸어서 다녀오기도 하였다. 어느 봄날 대학교 캠퍼스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오르던 중 J는 귀여운 파란 꽃을 보고 스마트폰을 꺼내 꽃검색을 하였다. 포털사이트에 꽃검색이 있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던 나는 오호 하며 손뼉을 쳤다. 스마트폰으로 꽃을 사진 찍으면 어떤 꽃인지 알려주는 깜찍한 기능이 있었다. 그 기능으로 파란 귀염둥이 풀꽃을 찍어보니, 에구머니나 큰개불알풀이란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쩐지 이 귀염둥이가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산책길에서도 어김없이 귀염둥이 풀꽃을 만났다. 봄내내 오래도록 피어있다. 귀염둥이를 볼 때마다 그 이름을 알게 해 준 J가 생각이 난다. 나이가 나보다는 서너살 많고 예쁜 얼굴에 똑똑하고 열정까지 넘쳐 뭘 해도 잘할 것 같은 사람이다. 본인의 튼튼한 다리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시절에 버스비를 아껴 막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집까지 한시간을 걸어다닌 덕분이라고 했었다.

다시 한 번 꽃검색을 해보았다. 여전히 그의 이름은 큰개불알풀이라고 알려준다. 검색을 좀 더 해보면 큰개불알풀은 열매의 모양이 개의 음낭을 닮아 붙여진 일본 이름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해주는 까치같다 하여 봄까치꽃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그래서 꽃말도 기쁜소식이다. 개화시기를 5-6월로 알려주는 사전이 많은데, 사실 봄까치꽃은 3월초부터 피어난다. 바짝 마른 잔디 사이로 빼꼼 올라온 귀염둥이를 보면 봄이 왔나보다 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친했던 감성쩌는 친구 A가 이른 봄 교정에 피어난 봄까치꽃을 보고 무척 반가워하면서 이 꽃이 봄 들녁에 가장 먼저 핀다 했었다. 그 땐 우리 둘 다 그 이름을 알지 못하고 그저 풀꽃이라 불렀다. 들판에 흔하게 피어나는 풀꽃들에 무심했던 나는 그 이후로 매년 봄까치꽃을 만날 때마다 A를 떠올렸다. A의 결혼식을 끝으로 우린 만나지 못했다.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점점 멀어져갔다.


먼저 연락을 하는 편이 아닌 사람으로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졌다.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데에는 열정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나와 같은 귀차니스트는 거기에 쏟을 에너지가 없다. 하루하루 무사하게 버텨내기도 버겁다는 핑계를 댄다. 그리하여 반가운 봄까치꽃을 보고도 그저 A를 추억하고 J를 떠올리며 스쳐지나간다. 이렇게 글로나마 표현해보는 동안 그들의 귀가 조금 간지럽다면 텔레파시라도 통했다 봐야 할까. 나의 추억과 나의 염려가 그들의 안녕이기를 바란다.  


한낮에는 볕이 여름처럼 뜨겁고 이 봄은 곧 지나갈 것이다. 봄까치꽃 덕에 나는 또 한 번 추억을 한가득 먹고 돌아왔다. 감염병 탓에  봄에도 여전히 추울지 모를 모든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으면, 따뜻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어김없이 돋아나는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