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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쮸댕 Aug 23. 2022

임신, 그 혼란과 슬픔에 관하여

나는 정말 임신을 원하는가?

나 이제 어떡해..


엄마에게 임신 소식을 전한 그다음 날이었다. 기쁨인지 놀라움인지 당혹감인지 혹은 그 모두인지 몰랐던 애매모호한 감정이 명확해졌다.


슬픔이었다.


휴대폰을 든 채 소리 없이 주르륵 떨어지는 눈물에 깨달았다.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엄마는 철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연신 웃었다. 친구네 딸 누구누구는 임신이 안돼서 얼마나 맘고생하는데 라는 말도 덧붙였다. 결혼할 때는 품에서 떠나보낸다는 생각에 슬픈 눈을 하시던 엄마였다. 임신 소식에 그토록 기뻐할 줄은 몰랐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엄마가 되는 상상을 했었다. '엄마 되지 않기'란 인생의 선택지에 없었다. 키가 김우빈보다 크고 속눈썹은 소보다 더 긴 남자 친구를 보면서 그와 똑 닮은 아이가 나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친한 친구들이 출산을 하고 발가락이 완두콩같이 작은 아기 사진을 보내주면 곧 다가올 미래를 상상했다. '엄마 됨'은 정해진 단 하나의 길 같은 것이었다. 갈림길은 없었다.

그렇기에 임신을 받아들이는 나의 감정은 스스로 조차도 혼란스러웠다.


언젠가는 겪을 일이었잖아. 왜 그래?


임테기에 뜬 두 줄을 보았을 때 당장 떠오른 것은 운동이었다. 2년째 해오던 크로스핏. 매일 아침 와드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좀처럼 내 안에 없던 활기를 넣어주었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게 해 주었다. 잘하고 싶은 동작도 생겼고, 웃음도 많아졌다. 또한 나는 달리기도 즐겼는데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리거나 남편과의 다툼 이후 감정을 추스를 때 동네를 몇 바퀴 뛰곤 했다. 운동은 일상의 중요한 양식이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급브레이크를 밟듯 중단해야 했다.


계속 살아가야 하므로 우리는 어떤 모습을 오래 붙잡아서는 안 되었다.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양다솔-


매일 아침 쉼 없이 달리며 땅을 내딛는 내 모습, 크로스핏 박스에서 지쳐가는 파트너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내 모습, 운동 후 시뻘게진 얼굴로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의 기운에 기대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던 내 모습


 임신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하여 그동안 운동 속에서 좋아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놓아주어야 했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내는 이별과도 같았다. 그만큼 아쉽고 슬펐다.

 

인터넷에 올라온 '임산부가 먹으면 안 되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자극적인 것, 단 것, 차갑거나 너무 뜨거운 것은 모두 피해야 했다. 평소 몸에 좋다는 것들도 태아에겐 위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홍삼 같은 것들. 혹시 넘어지면 위험하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출퇴근길에 타고 다니던 따릉이를 포기하고 천천히 걷는 걸 택했다. 하루에 커피는 딱 한잔만 그마저도 디카페인으로 바꾸었다.


회사에는 단축근무 신청을 위해 팀 사람들에게만 불가피하게 알렸다. 팀장은 내년부터 빈자리를 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곤란한 눈빛이었다.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에게도 갑자기 못 나가게 된 사정을 얘기했다. 모두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들에게 진짜 속마음은 얘기할 수가 없었다. 말로 뱉으면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당시의 내 슬픔은 정말 철없는 감정이었을까? 출산이라는 인생의 더 큰 기쁨과 비교하면 사소한 것일까?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진부한 말은 정확히 그때의 나에게 딱 들어맞았다. 그 심경의 변화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다리가 없었다. 그저 변덕스럽다 정도로만 표현할 수 있겠다.


유산


아이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간절하게 임신을 바라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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