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의 전쟁, 미친놈들의 전성시대
어린 나이부터 스마트 기기에 대한 적응력이 유독 좋았던 첫째가 똑똑한 게 나를 닮았다며 좋아했던 것도 잠시, 이제는 휴식 시간에 게임을 안 하면 쉰 것 같지 않고 심심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퇴근해서 애착 태블릿과 한 몸이 된 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며 항변하는 아들의 말에 부글부글 용암 끓듯 온갖 가축의 어린 동물 이름이 머릿속을 채우다 간신히 이성을 붙잡는다. 그러다 곧 인내의 익힘 정도가 이븐 하지 못하고
태블릿에 꿀이라도 발렸냐, 게임 속으로 들어가겠다.
안 하려던 잔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나는 생존하지 못했다.
한 번 몰입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게 어디 많이 본 거 같은 싸한 느낌이 든다. 나야, 나잖아.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공부했고, 만화책 삼매경에 날 지새는지 몰랐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놀기 위해 공부했던 지난날의 내가 여기 미니미 버전으로 고스란히 부활했다. 결국 집구석 만화방 주인이었던 친정엄마의 뒤를 이어 게임방 주인이 되어 속 터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름 어린 시절 사춘기를 편안하게 지나갔지만, 깊은 마음속에서는 비바람이 불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안식처가 되어준 것이 만화책이었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친구들과 소통하고 연대하면서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만화 덕질을 하면서 사춘기라는 파도를 잘 서핑하며 지내와 마흔 줄에 들어선 지금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 아들도 애가 쓰이는 일상에서 게임이라는 통로로 잠시 쉬어가는 게 아닐까? 만화에 미쳤던 나도 별 탈 없이 커서 멀쩡하게 사회생활 하는데, 게임과 사랑에 빠진 우리 아이도 나름의 부침을 겪으며 결국 잘 성장할 것이라는 조그마한 희망이 피어오른다.
친정 엄마가 사춘기의 나를 믿어주었듯이, 좌충우돌 초등시기를 겪고 있는 아들을 조금 더 지켜봐 주어야겠다. 모든 경험이 자양분이 되어 ‘너’라는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도록. 그 꽃이 비록 내가 생각했던 모양이 아닐지라도 자신만의 색과 향기로 세상에 만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