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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Feb 23. 2019

왜 다시 그 사랑을 하려 하나요?

이별과 재회의 이유.

연애 상담을 해주는 회사와 잠시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사실 그런 회사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땐 적지 않게 놀랐다. 내가 생각하는 연애 상담은 친구와 나누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래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사랑에 관한 문제는 그만큼 어렵고 막히면 한 없이 답답한 것이니까. 거기다 가끔은 친구보다 제삼자가 편할 때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들어오는 상담 내용은 거의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 문제'였다.


사실 거의라기보다는 전부라는 편이 옳을 듯싶다. 당장 인터넷에 '연애상담소'라고 검색해보면 대부분 재회를 도와준다고 홍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재회하고 싶어 상담을 청한 이나, 상담을 해주는 이나 그들이 초점을 맞추는 건 바로 이별을 선택한 상대방과 그에 따른 겉모습뿐이었다. 


그 사람의 생각, 성향을 판단하고 그 사람에게 변한 척 보여주는 것, 또는 말과 카톡에 법칙을 정해 그 사람이 나에게 매달리도록 하는 것 등... 그런데 과연 그것이 옳은 방식일까?


두 사람이 이별했을 때 한 사람만 일방적으로 잘못한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은 서로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쪽이 이별을 선택했을 땐, 그쪽이 더 버티기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경우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손을 놓은 상대가 아니라 놓게 만든, 그리고도 다시 잡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의 어떤 문제가 그 사람이 못 버티고 내 손을 놓게 만들었을까?'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냥 상대가 원하는 대로 '변한 척'한다고, 이런저런 스킬로 애태운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근데 상담을 받는 이나 해주는 이나'그냥 다시 사귀고 싶다'만 있을 뿐 '진심으로 이렇게 변해야 한다'는 건 없었다. 스킬만 있을 뿐 진심은 없었다는 말이다.


진정 변하지 않고 달라지지 않은 채 다시 만나봤자 그 결말은 뻔하다.  


"사랑하니까, 어떻게든 일단 다시 사귀고 보자.'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내가 바뀔 준비'가 먼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사랑해서 다시 만나고 싶다면서 그것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그건 그저 지난 사랑에 대한 집착과 아쉬움일 뿐이다.


상대의 간청과 설득으로 다시 사귀겠다 마음먹을 때도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난 '사람을 고쳐쓸 수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건 동의한다. '나는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자칫 어마어마한 책임감과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과연 이전과 같은 문제가 또 생긴다면 이를 자신이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사랑의 상처는 한 번 받을 때마다 깊어진다. 같은 사람에게 다시 받는다면 더욱더 아프다. 그래서 재회는 처음 인연을 맺을 때 보다 더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진심으로 변할 생각 없이 그저 상대를 계속 곁에 두고만 싶어 하는 것은 사랑이기 전에 단순한 욕심일 수 있다.


떠나는 사람을 잡기 전, 왜 당신이 그 사람을 잡으려 하는지, 어느 정도까지 변할 수 있는지 꼭 한번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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