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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Mar 20. 2019

우리 아버지가 회장인데요?

노력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영권 세습

애플의 현 회장은 스티브 잡스의 딸이나 아들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현 회장 역시 빌 게이츠의 자식들이 아니다.


애플의 현 CEO인 팀 쿡은 컴팩에 다니며 IBM PC 사업 북미 총괄자로 일하다 잡스의 부름을 받고 애플에 왔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는 1992년부터 입사하여 2014년 CEO가 된 인물이다.


이들 중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친족은 없다. 모두 많은 공부를 했고 실무에서 역량을 발휘했을 뿐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경영권 세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도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고 포드사를 창업한 핸리 포드도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줬다. 하지만 이런 경영권 세습은 많이 줄어들었으며 특히 현재 트렌드를 주도하는 젊은 기업들은 경영권을 세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재계 서열 15위 권 내에 태반이 가문 대대로 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길면 3대가 넘고 짧아도 2대에서 이제 3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계열사 사장, 임원이 줄줄이 같은 가문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이면, 아니 굳이 아버지일 필요도 없다. 친족 중 한 명이 대기업 회장이면 아직 초등학생이라도 차기 회장, 임원으로 대우해준다. 그 아이도 자기가 당연히 그리 되리라 생각한다. 친 아들이라면 몇 번의 범죄나, 사고를 쳐도 별문제 없이 경영을 승계한다.


이러니 재벌 2세, 3세들의 문제가 안 터질 수가 없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인을 '특권층'이라고 여겼을 것이고 중세시대 귀족이 평민들을 대하듯 다른 이들은 대한다. 그리고 부하 직원들을 마치 노예 부리듯 한다. 21세기에 농노 제도에서나 벌어질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이유다.


드라마에서도 이를 당연하게 이야기한다. 재벌 2세는 유학을 다녀와 승승장구한다. 경험을 쌓겠다면 평사원으로 입사하면 굉장히 개념 있는 것처럼 나온다. 그런데 평사원으로 입사하는 건 개념이 있는 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거다. 그리고 순식간에 본부장이 되고 빠르게 사장까지 진급한다. 


만약 이 재벌집 아들과 같은 대학에서 더 좋은 성적으로 공부한 이가 있다고 하자. 과연 그 아이가 이 재벌집 아들을 제치고 회장이 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애초에 그 일가가 임원, 주주, 이사 전부다 차지하고 있으니까.


흔히 말하는 '부조리'를 미디어에서 당연하게 보여주는 거다.


흔히 기업을 고를 때 가족 경영 회사는 피하라고 말한다. 가족 경영 회사에 끼이는 타인은 당연히 발언권도 줄어들고 회사의 구조는 가족들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공정한 회의나 토의가 이뤄지기 힘들고 수직적인 구조가 이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이 가족 경영이다.


이런 나라에서 10대들에게 열심히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뼈 빠지게 일해 임원이 되어도 결국 잘난 집안에서 태어난 젊은 CEO의 바로 턱밑이 최고다. 죽어도 넘을 수 있는 선이 그어져 있는 거다. 제한이 있는 사회에서 누가 노력을 논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재산을 어떻게 하는가는 본인의 자유다. 하지만 그것도 전제가 있다 바로 '능력에 따른 공정한 기회'이다. 재벌로 태어나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대기업 CEO는 될 수 없는 사회가 과연 공정한 사회인가? 말 그래도 태어나면서 신분이 정해지는 신분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일부에선 경영권 세습의 장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 기업의 기조와 방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대대로 기업의 경영을 바로 옆에서 보고 배웠으니 안정적으로 기업을 이끌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1994년에서 2000년까지 미국 508개 족벌 대기업의 경영성과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보면, 2세에게 경영권이 세습됐을 때 기업의 가치는 오히려 파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경영권 세습을 위해 부정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으니 더 논할 이유가 없다.


물론 우리만 이런 건 아닌다. 대표적으로 경영권을 세습하는 국가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일본이다. 그리고 그 일본은 우리와 매우 흡사한 기업 환경,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일본도 최고경영자 상위 10명은 전원 전문 경영인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10명 중 6명이 일명 '오너'이다. 


가업을 잇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떤 가게가 대를 이어 한 자리를 지키는 것은 손뼉 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기업은 다르다. 기업은 수 만 명이 일하는 곳이며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되는 곳이다. 동네 빵집이나 맛집이 아니란 거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동네 맛집도 자식이 아닌 더 뛰어난 종업원에게 가게를 넘겨주기도 하는데 말이다.


대기업 하나에 수 만 명의 생계가 달려있다. 더 크게는 국가의 경제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런 대기업 경영의 자리를 그 자식들이 어떠한 검증 없이,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줄줄이 차지하는 게 한국의 경제 규모에 어울리는 일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전문 CEO라는 말이 의미 없는 곳이 한국이다.


부모가 자신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누가 뭐라 할 일도 아니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자식에게 주는 게 무슨 잘못인가? 세금 다 내고 물려주겠다는데 말이다. 빌 게이츠도 자식에게 자신의 재산 중 0.02%로 물려주겠다고 했지만 그 금액이 100억에 가깝다. 부럽긴 하지만 누구도 이를 비난하거나 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영권은 다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많은 개혁을 하고 변화를 주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개혁은 이뤄지지 않는다. 전문 경영인이 빛날 수 있는 시대, 창업 가문이라도 능력이 없다면 잘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기업이 흔들릴 때 빨리 개혁할 수 있고 재벌 가문의 특권 의식도 줄일 수 있다.


부모가 능력 있다고 그 자식이 능력 있으란 보장은 없다. 그럴 거였다면 왕정은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미 역사를 통해 부모와 자식의 능력은 아무 상관없음이 무수히 증명됐다. 그리고 미디어도 재벌 2세를 다루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한 가문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 사회에 '귀족'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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