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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Apr 16. 2019

아이들이 미움받는 사회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노키즈존이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이해하는 분위기다. 이에 자영업자들도 노키즈존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사실 아이가 일반 가게에 들어와 통제를 벗어나면 보통일이 아니다.  친구는 키즈카페에서 일했던 시절을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고 회상했다. 애초에 각오한 키즈카페도 이러한데 다른 곳은 오죽할까.

 노키즈존이 아니라도 아이는 종종 경계의 대상이 되곤 한다. 공공장소에 아이가 나타나면 긴장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


누군가는 이를 '개념 없는 부모들 탓'이라 말한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 우리  기를 죽여요!"

" 아이인데 당신이  난리야!"

"자기들은 애가 없으니 저런 소리하지."


잘못된 부모들의 이런 말들은 흔히 알려져 있고 놀랍게도 실제 사용한 부모도 많았다. 물론 이것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개념 없는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이것만이 사람들이 아이들을 기피하게 된 이유의 전부라고 보긴 어렵다.


 따지고 보면 흔히 말하는 무개념 부모는 예전보다 줄어드는 추세다. 


15년 전만 해도 지금보다 더 한 부모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는 누구도 노키즈존을 말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싫다고 짜증내면 오히려 그 사람에게 너무 깐깐하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아이들이 그렇지 뭐.'라며 넘어가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럼 우리는 왜 아이의 반응에 이렇게까지 예민해진 걸까?난 그 이유가 여유없는 삶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 한 몸 건사하기도 녹녹지 않은 사회다. 여유는 없고, 삶은 빡빡하다. 늘 경쟁해야 하고 돌아오는 보상은 크지 않다. 이런 사회생활 속에 우리는 꿀 같은 휴식을 찾아 해 맨다.


퇴근길, 또는 주말, 우리는 그 휴식을 원없이 즐기길 바란다. 그런데 그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휴식을 아이의 울음소리가, 실내를 제집처럼 오가는 아이가 깨뜨려 버리는 것이다. 더는 남을 배려할 여유도, 기운도 없는 데 말이다.


만약 부모가 그런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면 그때 드는 짜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이는 아이의 부모도 마찬가지다. 맞벌이가 필수가 되고,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탐탁지 않은 현실에서 주말에 외출하려면 아이와 함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키즈존이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설령 어디가도 괜히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니 또 예민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곳에 무개념 부모가 있다면 덩달아 불편해지는 건 덤이고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불편해하고 밀어낸다.

물론 아이 부모의 노력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타인에게 내 아이를 배려해 달라, 이해해 달라 요구할 수 없으며, 상대가 그럴 의무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의 근본적 원인과 그 해결을 개인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사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은 아이 낳아기르기 힘든 나라다. 공공 기관, 대기업은 사내 유치원이나 어린이 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런 곳에서는 육아휴가 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부모는 일, 육아에 끊임없이 치이고 지쳐가는 거다.


휴일에 좀 쉬려고 해도 어린이 집, 아이 돌보미의 아이 학대 문제가 연이어 터져 나오니 불안해 아이를 믿고 맡길 수도 없다. 부모도 사람인만큼 가끔은 휴식이 필요하다. 개인의 노력과 함께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들도 아이들끼리 편하고 어른들도 어른끼리 편한 환경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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