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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May 09. 2019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쓰리고도 아픈 세상 마주 보기.

어린 시절 세상은 날 중심으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날 마치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세상에 우리 부모님, 친구가 전부이고 내가 다니는 학교, 학원이 전부던 시절.


흔히 '중2병'이라고 부르는 시기는 사실 나쁜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고 사춘기를 맞아 자아가 강해지고 자신을 남과 다른 '뭔가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는 시기에 나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오히려 이 병을 심하게 앓는 아이일수록 자존감이 높다고 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보는 세상이 넓어지고, 내가 있는 곳이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내가 성장하는 만큼 내가 보는 세계도 함께 성장한다. 그리고 그 세계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 속에 있는 나는 오히려 점점 더 작아진다.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아님을 깨닫는 건 언제일까? 


대부분 고등학교 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보통 이때가 인생의 제일 큰 첫 번째 고비이자 변혁의 시기이니까.


세상에 대학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깨닫는 시기이기도 이때였다. 내가 알고 있는 대학이 얼마나 허들이 높은 지 직접 체감하며 내가 우물 안 아이였다는 걸 깨달았다. 전국에 아이들과 날 비교하게 되고 좌절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그전에는 많아봤자 비교대상이 전교생이었으니까.


걸어가는 어린이들에게 '커서 어느 대학 갈래?' 물어보면 대부분 '커서 서울대 갈 거야.'라고 답한다. 내 사촌은 무려 '하버드'에 가겠다고 했었다. 나도 그랬다. 그게 이 시기에 무너지는 거다.


하지만 더 성장하고 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은 더 넓어지고 난 그저 이 세상의 작은 나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취업준비생에서, 회사원이 되면 경쟁자는 점점 더 많아진다. 난 점점 사라진다.

이것이 살면 살수록 우리의 인생이 재미없어지고 무미건조해지는 이유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니 더는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저 챗바퀴 같은 인생에 갇힌 느낌이 드는 거다.


"내가 죽으면 울어주는 사람이 있긴 할까?"

"내가 없었다고 누가 알아주기는 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자존감은 더 떨어진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프게도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다 배우자나 아이가 생기면 모든 초점은 거기로 기울어버린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주인공이 되기에 자신은 너무 늙어버린 뒤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비록 세상은 날 주인공을 인정하지 않지만 나만은 내 인생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것.

혼자의 시간일 때는 철저히 나를 위해 투자하고, 항상 나를 칭찬하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너무 미루지 말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해야 한다. 미루면 다음은 없다.


세상에서 주인공은 아닐지 모르나 적어도 내 인생에서만은 주인공이고 싶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이 쓰디쓴 인생이 조금이나마 더 즐거워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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