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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May 15. 2019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

어른이 되고픈 어른은 없다.

어린 시절, 게임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우리를 보며 어른들은 말했다.


"어른이 되면 다 안 하게 된다."

"지금은 어리니까 좋아하지."


내가 어른이 된 지금, 난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고 아이언맨 피규어를 보며 감탄한다. 


모바일 게임 시장은 성인이 된 아이들의 '자금력'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키덜트'란 말이 생겼으며 고가의 피규어를 모으는 어른들도 꽤 많다.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들 중에도 자신만의 '키덜트 문화'를 즐기는 어른을 이제 흔히 볼 수 있다.

당시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던 건, 게임이나 당시의 장난감들이 어른들이 보기에 생소했던 문화였기 때문이다. 기존 세대는 새로운 문화의 생명력을 일시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다른 경우에도 흔히 발생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의 문화를 그렇게 말하던 어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의 부모 세대에게 그 세대가 즐기던 장난감을 쥐어주면 모든 분들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신다. 어른이라는 가면 아래 숨어있던 '어린이'의 감성이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는 거다. 시대적으로 부모 세대에는 키덜트라는 문화가 없었을 뿐이다.


어른이 되고 싶어 어른이 된 이는 없다. 그저 어느 날 돌아보니 어른이 된 것뿐, 

사실 우리는 어린이던 그때 마음, 그때의 감성과 감정을 가진 채 겉모습만 커졌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 몸이 커지며'나이'라는 녀석에 따른 책임이 주어진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슬프고, 애달프다.


여전히 어린 시절처럼 상처 받고, 힘들고, 버겁지만, 어른이기에 견뎌라 말한다. 책임이라는 것이 어른이 된 우리의 마음을 짓누른다. 사회에 물든다고 말하지만, 이것이 사회생활이라 자신을 달래지만, 늘 마음속 한 구석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보며 그때를 그리워한다.


어른인 어른은 없다. 그저 어른이 된 어린이가 있을 뿐.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어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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