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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Jun 15. 2019

30살, 가출을 꿈꾸다.

우리가 독립을 꿈꾸는 이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 몸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이 말을 좀 돌려 보면 천하나 나라를 다스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집안의 화목이라 볼 수 있다. 


가족이란 힘들고 어려울 때 가장 힘이 되어주는 믿음직한 존재이다. 하지만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고 점점 멀어질 경우, 가족은 남보다 못한 끔찍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직장 상사나 친구와 갈등이 생기면 무시할 수 있다. 회사를 나갈 수도 있고, 인연을 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 관계는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 집이란 힘든 일상을 마치고 편히 쉬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갈등이 생기고 불편한 사람과 계속 같이 부딪히게 된다면 휴식은 휴식이 아니게 되고 집도 더는 집이 아니게 된다. 당연히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도 그런 양상으로 흘러간다.

부부는 무촌이다. 반면 부모와 자식은 일촌이다. 이는 부부가 부모 자식의 관계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뜻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부부는 서로를 선택했고 자신들이 하나가 되고자 결혼했다. 하지만 자녀는 아니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태어나 보니 내 부모가 부모였을 뿐이다.


이에 부모는 자신이 낳은 자식을 잘 양육하고, 자식은 자신에게 생명을 준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갈등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은 부모가 자식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그만큼 자식의 일생에 관여하는 바도 크다. 그리고 자신이 자녀에게 투자한 만큼 자식이 보답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부모든, 자식이든 서로를 다 이해하고 그 기대에 전부 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자식은 서로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부부가 된 부모와 달리 더욱 부모를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은 자식이 성장할수록 더욱 심해진다. 이제 하나의 개인이 된 자식을 부모는 인정하지 않고 이에 자식은 반발하고, 서운함을 느끼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떨어지는 거다.

물론 자식이 마땅한 수익이 없다거나, 아직 미성년자라면 독립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마땅히 수입 있고, 성인이며 직업이 있어도 부모들은 자식의 독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왜 멀쩡한 집을 두고 나가려고 하니?"

"결혼하면 그때 독립해라."


그러나 이는 욕심이다. 갈등이 촉발되고 자식이 독립을 원하며 그 조건이 갖춰진 상황에서 억지로 독립을 막아봤자 관계의 균열은 더 커지고 심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20살이 되며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10년을 살다 여러 이유로 다시 부모님과 살게 됐을 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사실 나와 아버지의 성격은 너무나 달랐고 20살 때 집을 나서기 전에도 그런 문제는 언제나 집안 어느 곳에 남아있었다. 당시에는 마침 그때 집을 나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30살에 다시 돌아와 함께 지내게 됐을 때, 당시 넘어갔던 문제가 터져 나왔다.


몇 번의 충돌 끝에 난 깨달았다. 아버지는 죽었다 깨어나도 날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영원히 같은 문제로 끊임없이 부딪힐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난 다시 독립할 준비를 시작했다.


단순히 자취가 편해서가 아니다. 매일 부딪히면 결국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더 멀어지고, 더 안 좋아질 테니 그전에 떨어져 지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그것이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 둘이 더 편해지는 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가족이라 함께여야 한다.'


난 이 말에 무조건 동의하지 않는다. 가족이기에 조심해야 하고, 가족이라도 개인이기에 각자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으며, 가끔은 떨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가족 간에 피어난 갈등의 골을 줄이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난 30살에 가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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