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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구 Dec 05. 2023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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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인칭 단수] 中




긴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해야 하나, 깊이 침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해야 하나 타자기에 손을 올려두고서 고민을 했습니다. 후자가 솔직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우울한 건 싫어서요.


계속해서 걷습니다. 단칸방에 누워있을 때도,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때도, 술로 가벼운 즐거움을 살 때도 나는 걷고 있습니다. 어디를 향해 걷는지는 모르지만 지면 아래를 향하고 있겠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가까운 곳의 나는 낙하하게 두고선 나는 그저 정지합니다.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초안을 받아보곤 바로 정지하는 바람에 펼쳐보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읽어보았습니다. 역시나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이런 글솜씨로 그동안 작가 운운 했다는 게 부끄러웠고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시선이 닿는 여러 곳에 연필로 'X'를 하고 고르지 못한 곳을 적어나갔습니다. 드물지만 어떤 곳에서는 꽤 괜찮은 점도 보았습니다.


이 낙하는 X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렇다면 이 여행을 끝마칠 수 있으려나요. 여행이 너무 길었으니 돌아가기엔 시간이 걸릴 듯싶습니다.


도착하면 침대 맡에    두고  잠을 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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