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뿌리내리기 위해, 나는 떠나야만 해

영화[리틀포레스트]

by 정주구
"오래 남을 줄 알았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도망쳐 버렸어."
"도망친 거 아닐걸? 그냥- 난 왠지 혜원이가 금방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래? 왜?"
"아주 심기. 지금 혜원이는 아주심기를 준비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양파는 모종 심기에서 시작된다. 가을에 씨를 뿌려두었다가 발로 잘 밟고 건조와 비를 피해 멍석을 열흘정도 덮어두었다가 싹이 나면 걷는다.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워서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이 '아주 심기'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이다.


-아주 심기를 하고 난 다음에 뿌리가 자랄 때까지 보살펴주면 겨울 서릿발에 뿌리가 들떠 말라죽을 일도 없을뿐더러 겨울을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영화 ‘리틀포레스트’를 좋아한다. 영화나 책을 반복하여 보는 게 좋은 감상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새로운 작품만을 찾아 헤매는 나에게, 그 작품만은 예외였다. 스무 살에 일본 원작을 접한 후 대여섯 번은 보았고 인상 깊은 장면을 사진 찍어 인화해서 간직하기까지 했으며, 한국에서 리메이크한 작품이 나왔을 때는 영화관에서 서너 번이나 보았고 이윽고는 수첩을 들고 가 어두운 영화관에서 지렁이 필체로 대화를 옮겨 적을 정도로 작품에 열정을 보였다. 정말 애정해마다하지 않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자면 더 많은 것을 적을 수 있지만 이쯤에서 각설하겠다.


내가 작중에서 애착이 가는 부분은 ‘아주심기’이다. 아주심기에 대해 얘기하기 전, 일단 영화의 전반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여주인공 혜원은 어머니와 시골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유년시절부터 몸 담아 온 시골생활에 권태로움과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가출을 말미암아, 또 대학교 입학을 이유로 도시로 떠나게 된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덧붙이며.


물론 대부분의 여행기가 그렇듯 새로운 환경으로 모험을 떠난 혜원은 여러 시련을 겪게 된다. 여행기의 일반적인 플롯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떠난 모험에서 의도치 않은 갖은 시련을 겪은 뒤 처음 원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깨달음과 함께 얻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혜원에게 시련은 도시의 패스트푸드, 도시사람들의 깍쟁이스러움, 치열한 경쟁, 돌아오는 패배 그리고 권태감과 지겨움을 이유로 고향을 떠난 것에 합당함을 부여하는 트로피에 대한 쟁취 욕망이었다.


그 시련들에 현기증을 느끼며 어느 해 겨울, 다시 시골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들이 시골에 돌아온 이유를 물었을 땐 도시생활에 통달한 듯, 다소 여유 있는 태도와 함께 ‘배가 고파서’와 같은 가벼운 농담으로 웃으며 넘길 뿐이었지만, 혜원의 시선은 곧바로 아래로 향하곤 했다. 그녀는 돌아온 것이 아니라 시련들로부터 도망쳐 온 것이기 때문이다. 여행기라면 마땅히 깨달음과 함께 무언가를 얻어와야 하는 것인데, 혜원은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딘가 개운하지 않은 마음 만을 가져왔다. 그저 시작점으로 도망쳐 온 것이니, 그녀의 여행기는 아직 시련 속에 있는 것이다.


혜원은 어릴 때 경험하여 익숙한 농작일을 시작한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성실히 한다. 비료를 뿌리고, 씨앗을 심고, 잡초를 뽑고, 수확을 하고, 요리를 하고, 또 다음 계절을 준비하지만 그녀는 이따금씩 무언가 놓고 온 물건이 있는 사람처럼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는 순간들이 생긴다. 마치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 그 길을 따라 생기는 기포와 비슷한 시선이다. 시선은 순간을 외면하기 위해 다음 할 일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떠나올 때의 계절인 겨울에 가까워져 오고, 그녀의 잔잔한 호수 같은 생활에 작은 돌멩이들이 던져진다. 주인공으로 하여금 깨달음과 자극, 자각 어쩌면 다시 떠날 용기까지도 부여해 주는 것들이 유입된다. ‘리틀포레스트’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도시로 홀연히 떠난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 본인의 확고한 가치관에 따라 도시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완전히 정착한 죽마고우와의 대화와 같은 것들이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와의 대화 중 하나는 이렇다. 과수원 일을 하는 죽마고우는 그녀에게 과수원 수확 시기에 도와달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 시기에 본인도 여러 수확일로 바쁘다고 장난치고, 그는 대답한다. "서울 간다 간다 말하더니 가을 갈무리 아주 야무지게 하시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이윽고 분위기는 어색해진다. 장난 삼아 던진 작은 진심이 혜원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녀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지 않는다. 다음 계절에는 본인이 이곳에 없으리란 것을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도망쳐 올 때와 같은 계절에 다시 한번 떠난다. 단순히 시골에서의 생활에 싫증이 나서 떠나는 게 아니라, 이곳에서 잘 살기 위해서 그곳으로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떠난다.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패배와 실패의 기억으로써 계속되는 회한과 현기증을 불러오는 도시로 다시 돌아간다. 단순히 경쟁에서의 성공보다는, 평생의 의문이었던 도시라는 곳에 원만히 뿌리내려 ‘정주민’으로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뽀드득 눈 밟는 소리와 그녀의 발자국을 보여주며 영화는 양파 기르는 법을 알려준다. 그녀의 도전에 대한 감동이 무르익을 무렵, 불현듯 나오는 양파에 대해 얘기하는 내레이션에 뭇 감상자들은 꿈에서 덜 깬 것 같은 헷갈리는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헷갈림을 참고 그 부분을 자세히 본다면, 양파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아주 애정하게 될 것이다.




"오래 남을 줄 알았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도망쳐 버렸어."

"도망친 거 아닐걸? 그냥- 난 왠지 혜원이가 금방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래? 왜?"

"아주 심기. 지금 혜원이는 아주심기를 준비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양파는 모종 심기에서 시작된다. 가을에 씨를 뿌려두었다가 발로 잘 밟고 건조와 비를 피해 멍석을 열흘정도 덮어두었다가 싹이 나면 걷는다.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워서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이 '아주 심기'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이다.


-아주 심기를 하고 난 다음에 뿌리가 자랄 때까지 보살펴주면 겨울 서릿발에 뿌리가 들떠 말라죽을 일도 없을뿐더러 겨울을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