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에 입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드레스룸 한편에 쌓여있는 가방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가죽가방은 부피도 크고 조직이 고정되어 접히지 않아 자리 차지 또한 크다. 반면 천가방은 보관할때도 몇번 접어서 두면 자리 차지 또한 작다. 거의 매지도 않는 명품백은 그야말로 애물단지였다. 더는 쓰이지 않는 물건들에 귀한 자리만 뺏기고 있었다.
이미 내면에서도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명품백들을 가장 먼저 비우기 시작했다. 마음에서 멀찌감치 멀어져 있더라 하더라도 비울 때가 되면 막상 본전 생각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본전 보다 무서운게 고정된 반응양식이다. 어느새 몸과 마음의 세포들은 에코백의 가벼운 편리함에 젖어 있었다. 명품백의 무거운 불편함으로 돌아갈 여지는 추호도 없었다. 속은 쓰렸지만 모두 비워냈다.
최근 뉴스에서 한 명품브랜드 382만 원 가방의 원가가 단돈 8만 원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하청에 하청을 주고 노동착취 같은 열약한 근무 환경은 소비자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이미지의 명품가방이 탄생될만한 곳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가 명품백을 드는 것은 그 가방 자체이기보다 가방이 입고 있는 브랜드인 것이다. 명품이라는 브랜드의 가치 때문에 우리는 열광하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는 자신들의 휘소성과 높은 가치를 강조하며 마케팅을 한다. 유명한 셀럽들을 엠버서더로 인명하고 그들을 공식행사에 초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또한 물질 만능 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의 허상일 수 있겠다. 명품백을 들면 나도 셀럽처럼 특별해질 것 같고 부자들처럼 부유해질 것 같은 환상말이다.
374만 원의 돈으로 브랜드를 산다고 해서 우리의 가치는 올라가지 않는다.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없다. 본질적인 가치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채워야 할 것은 인간으로서의 내면적 가치이다.
이제는 명품백 대신 2개의 에코백이 있다. 노트북 가방으로 아페쎄 데님 에코백을 든다. 17인치의 제법 큰 노트북도 거뜬히 들어간다. 조직 소재도 튼튼해서 안전해야 하는 노트북 가방으로 제격이다. 그전에 노트북은 필히 하드케이스에나 가죽 파우치에 보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들이 더 안전할 수 는 있겠지만 더 불편한것도 사실이다. 2년넘게 써보니 에코백 만으로도 노트북 가방은 충분했다. 덕분에 불편한 하드케이스나 무거운 가죽 파우치가 더는 필요가 없다. 주로 카페에 글쓰러 갈때나 짐이 많은 날 사용하기에 알맞다.
나머지 하나는 베이지 색의 기본 백이다. 색상이 진하거나 튀는 컬러는 그만큼 쉽게 질릴수 있다. 쉽게 질리면 또 새로운 물건을 탐하게 된다. 이런 무채색은 개성은 부족하지만 언제봐도 변함없는 무던함이 있다.
작은 토트백 사이즈보다 끈이 긴 숄더백 사이즈가 실용성이 높다. 어깨에 맬수 있어 두 손목도 자유롭고 왠만한 일상 소지품은 거뜬히 들어간다. 그렇다고 막 크지도 않아서 어디든 가볍게 들고 다니기 편하다. 동네 마실갈때나 바다 피크닉갈때나 어딜가도 이 가방만 있으면 든든하다. 4년째 데일리백으로 잘 애용중이다.
중요한 공식 행사가 있을 때 에코백을 들고 가기 그렇다면 그냥 아무 가방도 들고 가지 않으면 된다. 옷만 상황에 맞게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는다면 가방의 유무는 중요치 않다. 혹여 에코백을 들고 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주변을 의식하는 우리 마음의 문제이다.
명품백에서 에코백으로의 이동은 내게 소비의 가치를 재정립하게 해 주었다.
단순히 주류를,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내게 맞는 가치소비를 하게 했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화려함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는 가치와 필요의 당위성을 우위에 두게 되었다.
가벼운 에코백이 좋다. 혹여 잊어버려도 타격감이 적고 관리도 편하고 바닥에 훅훅 두기에도 부담 없는 나의 에코백이 좋다.
에코백과 함께하는 생활은 가볍고 느긋하다. 어디든 가기 쉽고 변화에 유동적이다. 행위의 여유와 자유가 주어진다.
여행할 때 캐리어 안에 작게 접어두면 백인백이 되고 캠핑할 때 안에 옷을 넣어 주면 포근한 베개까지 되어준다. 이만한 아이템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