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하 Aug 26. 2024

단정한 화장대

집에서 유일하게 나만을 위한 공간이 있다면 바로 화장대가 될 것이다. 내가 홀로 독점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화장대는 특별하다. 여기까지 보면 화장대를 사용하는 시간이 길고 다채롭게 활용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전에 세안을 하고 몇 안 되는 기초화장품을 바르고 그 위에 선크림과 립밤을 덧대주면 외출준비 끝이다.

늦은 밤 하루의 여정을 깨끗이 비워낸 피부결을 고르고 담뿍 수분담요를 덮어주면 하루치 화장대의 역할은 마무리된다. 이 여정 사이에 진한 라인과 다양한 색조가 낄 틈은 없다.

진하고 여러 과정이 겹치는 메이크업을 하던 때에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진한 라인과 화려한 색이 어린 얼굴은 예쁘기보다 낯설었다. 내가 아닌 것 같은 어색함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메이크업에 소질이 없어서였을 테다. 부족한 소질을 커버해 보고자 화장대 위를 다양한 제품들로 채워도 보았다.

화장품의 개수가 늘수록 피부의 무게는 무겁고 갑갑했다. 만족감이 찾아들기도 전에 불편함이 일상의 수면 위를 차지했다.

메이크업을 위해 아침 준비 시간은 배로 늘고, 밖에 있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수정을 하거나 체크해주어야 했다. 안 그러면 쉬이 판다 눈이 되거나 치아 위에 립을 드리운 채 환하게 웃을 수도 있기에.

집에 가면서도 리무버로 이곳저곳 화장 지울 생각을 하면 피로감이 더 쌓여갔다. 혹여 그냥 자버린 다음날에는 며칠은 늙어버린 피부를 감당해야 했다.

분명 효과가 좋지도 않고 과정을 반기지도 않던 나에게는 그렇다고 메이크업을 그만둘 용기도 없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라는 안일한 믿음이 컸으리라.

마침 화장품 성분이 피부에 좋지만은 않다는 새로운 사실을 접하고 그간 느꼈던 이유 모를 갑갑함에 납득이 가게 되었다. 두꺼운 화장이 피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더는 진한 메이크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얼굴에서 두터운 외투를 걷어낸 기분이 한결 편하게 느껴졌다. 가벼움을 느낀 건 비단 피부뿐만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화장을 해야 할, 화장을 지워야 할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루에 1시간 정도의 여유를 되찾았다. 불필요한 성분으로부터 해방된 피부는 가볍고 편안하게 숨쉬기 시작했다. 건강한 본연의 생기를 찾아갔다.



화장에 열의는 없지만 피부 관리에는 관심이 많다. 자외선이야말로 피부 잡티와 노화의 주원인임을 깨닫고부터 양산이나 모자를 애용하고 있다.

외출 시에 선크림과 양산부터 챙긴다. 특히 여름날에 양산은 필수다.  양산만큼 피부에 좋은 물건도 없다.

모자는 양산만큼 차단율은 떨어지지만 두 손이 자유로워 아웃도어 활동할 때 사용하기 유용하다. 365일 비가 와도 외출 시에는 선크림을 발라주고 여름에 반 팔로 운전 때는 팔토시를 차에 상비해 두고 껴준다. 피곤해도 세안은 꼭 깨끗이 하고 수분크림으로 피부를 촉촉이 덮어 수면에 들려고 한다.

피부과는 못 가더라도 주에 2번 정도는 꼭 마스크팩을 해주려 하고 노화의 원인인 수분 부족을 예방하기 위해 하루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자주 물을 챙겨 마시고 있다.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는 성분이 수분인 만큼 수분감은 피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는 인바디를 하면 항상 수분 부족이 뜨곤 했는데 물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들이고부터는 체내 수분율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동시 텀블러에 물을 가득 채워 다닌다. 한 여름에도 찬물 대신 온수를 담는다. 따뜻한 물은 몸의 순환을 돕고 기초체온 상승효과도 있다. 기초체온 상승은 면역력 증가에도 좋다. 반면 찬물은 몸의 기운을 떨어트리고 신진대사를 저하시킨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면서 물 마시는 횟수가 확연히 늘었다. 이제는 피부건강을 넘어서 일상에서 건강을 챙기는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심플해진 역할만큼이나 화장대가 소유한 물건수도 줄어갔다.

화장품 외에 잡동사니도 가득했다. 화장대 위에는 여러 물건이 늘 나와있었다. 줄이고 줄여갔다. 이제는 매년 같은 제품으로 채워 넣는 기초 몇 개와 메이크업 몇 개가 전부다. 전부 다해서 10개가 넘지 않는다.

덕분에 언제나 맑은 표면으로 반기고 있다.


단정한 화장대 앞에 앉는다.

몇 개 되지 않는 소소한 물건과 몇 분 보내지 않는 시간이지만 특별하다.

수분을 지키고 해로운 것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두피 건강을 위하고 부드러운 머릿결을 유지한다. 마침표로 바르는 립밤은 밝은 인상을 선사한다. 사소하지만 하루 속 나를 돌보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 중 하나이다.

화장대가 간소해지고 피부결이 가벼워질수록 거울 속 보이지 않던 세계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 너머의 본질적 세계이다.

물리적 세계에서 외모는 중요하다. 우리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게 더 호의적일 수 있고, 먼저 눈길이 가게 마련이기에.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 세계이다. 화장은 언젠가 지워진다. 영원하지 않다. 반면 본질은 항구성이다.

잡티를 완벽히 가려 예쁜 얼굴보다 잡티가 몇 개 보여도 투명하고 맑은 피부가 더 나에 가깝다.

진한 커버와 화려한 색상대신 편안한 가벼움을 택한다.

일시적인 메이크업에 투자하기보다 지속적인 피부건강을 관리한다.

외면보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값지다.

사람을 근사하게 꾸며주는 것은 화장이나 꾸밈보다는 내면적인 부분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얼굴이 예쁜 사람보다 예쁜 말을 하는 사람.

인공적인 향보다 자신만의 향을 가진 사람.

외적 화려함보다 내적 우아함이 깃든 사람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