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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Oct 07. 2024

감정 미니멀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헤어샵 방문 주기가 3개월에서 9개월로 늘어났다.

그전에는 곱슬에 머리숱도 많아서 자주 다녔다. 점점 갈수록 외향 꾸미기에 쏟는 시간과 노력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직을 하면 돈도 많이 들고 한 번에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오전 시간이 통으로 날아가 버린다. 정말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게 되자 이런 외향적 소비가 낭비적으로 다가와 줄이게 되었다.     

여름 장마가 시작될 즘 머리의 곱슬기도 바람 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보글거리는 부피를 견디지 못하고 미용실을 다녀왔다.

예전에는 잘하는 곳을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이제는 가까운 집 앞이 최고다.

조금이나마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는 방법이다.

하여 단골 가게가 된 집 앞 미용실로 향했다.


맨 처음 이곳에서 머리를 하던 날이 떠오른다. 1인샵으로 비슷한 또래 여자 사장님이다. 의례적으로 있어야 할 한 가지가 없었다. 바로 '대화'이다. 

그간 살아오면서 들렸던 수많은 샵들에는 공통적으로 '대화'가 있었다. 헤어 아티스트와 손님 사이 오고 가는 대화 말이다. 가벼운 날씨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있었던 근황과 미용실의 작은 에피소드까지. 듣다 보면 어느새 웃음꽃이 피고 만담이 이어진다.     

열처리기처럼 미용실의 일부분이었던 대화가 부재하자 '사장님이 나와 대화하기 싫어하는 건가?'라는 소심한 의문도 던져보았다. 물론 그전의 모든 헤어 아티스트와 만담을 하진 않았다.

아티스트가 많고 규모가 큰 샵에서 대기도 많고 하면 대화하기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은 1인 가게이고 대부분 우리밖에 없다. 대화의 부재는 곧 침묵이다.

1인 가게에서 대화가 없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이 정서가 낯설고 까끌거렸다.     

이날도 짧은 목적성 대화를 마치고 고요와 함께였다.

이날따라 평소와 다르게 머리하려는 사람이 가득했다.

일관된 고요 속 침묵도 변함없었다.

그는 나와만 대화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여느 손님과도 대화하지 않았다.

4시간 동안 가게 안에 대화는 없었다. 대화 대신 다른 것이 느껴졌다.

편안함이었다. 시끌시끌 시장통 같은 분위기 대신 혼자 있는 것 같은 여유가 드리웠다.     





대화는 감정이 수반된다. 대화하려면 감정이 필요하게 되고 대화를 하게 되면 감정이 소모되게 된다. 대화도 결국 감정 노동이 될 수 있다. 친구나 가족 간에 유대감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즐거움이겠다. 하지만 형식적인 겉치레식 대화에는 꼭 즐거움이 수반되는 것이 아니다.

몸을 움직여 하는 육체적 노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여 하는 감정 노동도 있다.

대화가 의무가 되면 감정 노동이 될 수 있다.

이 가게에는 감정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 노동은 헤어아티스트만 하는 게 아니다.

주고받는 것이기에 손님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왜 미용실에서 '대화'도 한 부분으로 여겨왔을까?!     

한국의 대표 정서 중 하나로 '정'이 있다.

유명한 초코과자의 카피 문구는 정을 바탕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고 이야기한다.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정의 정서는 서로를 이어준다.

이어진 만큼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배려도 크겠지만 역으로 타인을 의식하는 예민함 또한 자리하게 된다.

하여 둘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은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으로 여기기 쉽고 상대방에 대한 무심함을 드러내는 것은 그를 향한 무례함으로 이어지기 쉽다.

타인의 반응에 민감한 문화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어 침묵을 여백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괜히 의미도 없는 날씨 이야기를 건네고, 겉치레식 말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불필요한 감정 노동과 감정 소비가 발생하게 된다.     


육체노동은 하루 힘들고 푹 쉬면 개운하게 사라지지만 감정 노동은 처음에는 잘 모르고 있다가 조금씩 오랜 기간 쌓여 정신적 피로감으로 축적된다. 그렇게 만성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만성으로 넘어가기 전에 자신의 감정과 마주할 필요가 있겠다.



미용실을 나오고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만져본다.

손끝에 흘려보낸 감정들까지 머리카락 사이에 걸리는 듯했다.

어색한 공기를 없애고자 항상 먼저 말을 건네고,

겉치레식 주제로 운을 떼고,

관심 밖의 이야기에 웃음을 내고 있던 지난 감정들까지.     


사화와 이어져있다는 연대감도 좋지만 이제는 느긋한 개인주의자가 되고 싶다.

이웃 간 정을 나눌 때는 나누고 평소의 일상에서는 개인만의 영역을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그에 앞서 나부터 나의 감정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타인에 대한 예민함과 불필요한 감정 소비를 줄인다.

감정 미니멀은 물질 미니멀 만큼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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