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질은 잃어버리더라도 되찾을 수 있지만 절대 되찾을 수 없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삶"이다.' - 스티브 잡스
5년 전에 <심플하게 산다> 도미니크 로로, 책을 접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했다. 신혼초였던 그때, 처음에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막 구입하지 않고 계획하며 소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난 뒤 아이가 태어날 때쯤 본격적으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5평 집에서 1년 정도 아기와 지내야 하기에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다. TV장안에 가득했던 책들과 물건들을 먼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안의 물건들을 다 비우고 난 뒤 장까지 드림을 했다. 거실을 차지하던 커다란 장이 사라진 뒤 벽에 걸려있는 TV를 바라보았다. 좁은 15평 집 거실이 2평은 넓어 보이는 듯 쾌적해졌다. 그 외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추가로 정리하고, 집에 빈 공간이 늘어날 수 록 눈에 피로도도 줄어들었다. 물건들을 비우고 나면 생활에 큰 지장이라도 생길 것 같이 걱정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모두 다 필요했던 것들이 아니었다는 걸. 물건들에 넓지도 않은 집 공간을 많이 내어주고 있었다는 걸.
아이가 태어나고 1년이 되어갈 무렵 우리 가족은 속초로 이사를 한 달 정도 앞두고 있었다. 이삿날이 다가올수록 벽에 걸려있는 TV가 눈에 걸렸다. 2년 전부터 TV 없는 거실을 만들자고 신랑을 계속 회유해보았다.
"집에서 꼭 있어야 할 가전 중에 하나가 바로 T야!"
그때마다 TV사랑을 외치는 큰 벽에 가로막혀 무산되었다. 이번에는 큰 결심을 하고 준비를 했다.
'유대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5퍼센트에 불과한데, 노벨상 수상자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하고 있다.'
'유대인 가정의 거실에는 대부분 TV가 없다. TV 대신 책이 가득한 책장, 앉아서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책장과 의자가 있다.'
'한국 사람의 하루 평균 TV 시청시간은 두 시간이며 평생으로 치면 잠자는 시간 빼고 10년이라는 시간이다.'
_부모라면 유대인처럼/고재학
이 구절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어주고 한번 더 물었다. 드디어 그의 승낙이 떨어졌다.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tv 시청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긴 것이다. 대신 빔을 사서 안방에 두고 시간 날 때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렇게 50인치 tv는 우리 거실과 이별했다.
<TV 없이 보낸 3개월 차 느낀 점>
TV가 없는 낮, 딸과 함께 하는 시간. 돌이 막 지난 꼬맹이와동요를 자주 듣는다. 문화센터에서 받은 CD노래들. 수업들은 것들이 생각나서인지 노래 들을 때마다 흥겹게 씰룩거리며 춤춘다. 그리고 세이펜을 오디오에 연결해 자주 노부영 마더구스를 들려주고 있다. 하도 들어서 나는 가사를 다 외울 판이다. 그래도 J의 이중언어 노출을 위해 이 어미는 열심히 틀어줘야지. 그리고 TV를 안 보니 둘이 할게 별로 없다. 물론 같이 놀아주고 하면 되는데 하루 종일 몸으로 같이 놀아주려니 체력이 부족. 그래서 주로 책을 자주 읽어준다. 거의 신생아 때부터 들인 프뢰벨 영아 다중은 자주 보고, J가 하도 물어뜯어서 너덜너덜해졌다. 영어책은 영다 영어 버전과 스폿 보드북. 이렇게 하루에 몇십 권은 읽어주는 듯하다. 힘들 때는 싱킹 펜과 세이펜 찬스를 쓰기도 한다. 결론은 영상매체가 없기에 자연스레 책을 더 많이 읽고 있다. 대부분 유대인들이 거실에 TV를 안 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겠지. 스폿 보드북 같은 경우 눈 감고도 책 내용이 소리로 들린다. 나중에 학원비 절약하기 위해선 지금 열심히 하는 수밖에.
TV 없는 저녁, 아빠와 다 함께하는 시간. 다 함께 식사하는 시간에 TV 좀 끄고 대화 좀 하자고 더 이상 얘기 안 해도 돼서 참 좋다. TV가 없으니 자연스레 신랑이 집에 오면 대화가 시작된다. 특별한 이야기 아니더라도 서로의 일상이 어땠는지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이때 가장 TV 없애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다 마주 보고 단란하게 식사하고 싶어 식탁도 원형식탁으로 바꾸었다. 역시 생각처럼 서로 다 편하게 바라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식사를 다하고 신랑도 꼬맹이와 잘 놀아준다. TV가 있었을 때는 소파 위에 누워 화면 보기 바빴는데, 딸과 함께 웃음소리가 거실을 자주 메우고 있다.
주말은 무비 나잇. TV가 없는 대신홈시네마로 가끔 영화를 보려고 빔프로젝터를 구입했다. 빔으로 신랑이 가끔 TV를 보고 싶을 때 볼 용도로 TV요금을 계속 남겨 두었다. 빔프로젝터를 사고 보니 요즘 모델은 잘 나와서 바로 인터넷 연결해서 다 볼 수 있게 돼있다. 그래서 TV를 끊으려고 KT에 전화를 했다. TV해지하겠다니 상담원분이 계속 여러 가지를 권했다. "집에 TV가 아예 없어요" 하니 "네?, 아.. 네.." 하며 더 이상 권하질 않고 해지를 해준다. TV를 해지하니 한 달 15000원 정도 돈이 이제 나가지 않는다. 인터넷 핸드폰 TV 결합해서 쓰고 있었는데 인터넷이 공짜여서 TV를 해지해도 인터넷은 계속 무료로 쓸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재약정을 안 하고 있었는데, 재약정해서 8만 원 농협상품권 받았다. 예전 같았으면 백화점 상품권을 받았을 텐데 속초에는 백화점이 없다. 자주 장 보러 가는 하나로마트에서 쓸 농협상품권으로 겟. TV까지 다 묶어서 3년 재약정하면 30만 원 상품권을 준다고 한다.
빔프로젝터 6년간 잘 애용하면 6년 동안 TV 수신한 비용과 같아지니, 들인 빔은 최소 6년간은 함께하려 한다. 화질이 좋아 커튼만 치면 낮에도 볼 수 있다.무엇보다 아기 낳고 영화관 못 간 설움을 한 번에 싹 가시게 해 주었다. 주말에 한 번씩은 꼭 챙겨 보려고 한다.
<TV 없이 보낸 지 1년 차 느낌>
TV 없이 속초서 지낸 지 어느덧 1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우리 집 거실에는 TV가 없다. 1년이 지나가자 이제는 TV 없는 삶이 익숙해졌다. 집을 보러 오는 지인들마다 거실이 넓다고 이야기한다. TV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빈 벽이 주는 쾌적함을 좋아해 준다. 넓고 탁 트인 거실은 아이가 놀기에도 넓고 눈의 피로도도 줄어든다. 저녁 루틴을 다 끝마치고 거실에 모여 가족이 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 꼬맹이와 놀아주거나 함께 책을 읽는다.
빔이 생긴 뒤로 TV가 있었을 때 보다 오히려 영화를 더 자주 챙겨 보고 있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거실에 빔을 꺼내와 신랑과 둘이 영화를 본다. 홈시네마를 켜고 와인과 치즈 한 조각이면 일주일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든다. 영화 취향이 안 맞을 때면 혼자 볼 때도 있는데 이 역시 참 애정 하는 시간이다. 좋아하는 영화를 편히 혼자 즐기는 시간. 이별한 TV가 내어준 고마운 시간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는 듯하다. 아마도 물건 탓일 것이다.' - <단순함의 즐거움> 프랜신 제이
무엇보다 좋은 점으로는 무의식적으로 TV에 뺏겼던 시간, 나만의 시간을, 우리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어 가장 좋다. 앞으로도 쭈욱 TV와 이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