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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항 Mar 31. 2021

어떻게 줄일 것인가

2021년 3월 30일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한 계기는 원룸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서부터다. 가지고 있던 짐을 다 들고 가서 또다시 사람보다 물건이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한 방이 되는 게 싫었다. 길었던 맥시멈 라이프가 무색하게 내가 시작했던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건들을 챙길 때 짐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1. 필요하고 없으면 불편한 것

2. 필요하지만 없어도 불편하지 않는 것

3. 원하고 있으면 편한 것

4. 원하지만 없어도 불편하지 않는 것

으로 ‘필요성 ‘편리성 고려해  가지로 분류했다. 여기서 1. 필요하고 없으면 불편한 것과 3. 원하고 있으면 편한   가지만 챙기기로 했다. 여기서 방심하면  된다. 마지막 조건은 1, 3 해당되더라도 일주일간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면 과감히 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한테 정말로 필요한  뭔지 물건만 봐도 알게 되고, 이렇게 적은 물건들만 가지고도 생활할  있음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쇼핑의 질도 달라진다. 다른 것은 눈에도  들어오고 정말 필요하고 원하는   가지만 사게 된다. 어차피 다른  사봤자 짐만  뿐이니까.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장기여행의 짐은 반으로 확 줄었다. 따뜻하지만 무게까지 가볍고 더우면 말아서 부피도 줄일 수 있는 경량 패딩, 바지 2벌, 티 2장, 속옷과 양말, 카메라와 충전기, 작업용 아이패드, 전자책, 요가매트가 전부다. 스노클링이 하고 싶어 스노쿨 장비도 들고 왔는데 이건 여름이 지나면 버릴 계획이다. 나머지 소모품들은 장소 불문하고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없어도 걱정되지 않는다. 모든 짐을 잘 접어서 욱여넣으면 35L 가방의 절반도 채 안 찬다. 이 짐은 그냥 전보다 가벼워졌다는 단순한 목적 달성뿐 아니라 어디를 가든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이 것만 있으면 사는데 문제없다는 든든한 의미까지 담고 있다. 무슨 짐에 이런 장황한 의미를 부여하나 싶지만 무겁고 큰 짐을 수십 번 싸고 풀고 반복하며 몇 년간 어깨에 메고 다니게 되면 짐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진다.

지금은 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생활하고 있다. 원룸에서 살 때 하루에 전자레인지만 10번 이상은 써서 어딜 가든 전자레인지가 꼭 필요할 줄 알았는데 또 없으니 없는 대로 살게 된다. 전자레인지는 나에게 2번이었다. 필요하지만 없다고 해서 딱히 불편하지 않은 존재.

하지만 각자의 생활 패턴과 짐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에 내 생각을 강요하진 않는다. 호주 가기 전 비행기 옆자리에 한국인 여자애가 탔었다. 그 여자애는 커다란 캐리어 두 개와 큰 보조가방, 작은 보조가방까지 뭔가를 잔뜩 담아왔다. 혹시나 숙소가 더러울까 들고 온 이불, 배게, 전기장판, 각종 한국 라면과 음식들, 옷장을 통째로 넣은 듯한 옷 무더기들 등 손은 두 개뿐인데 짐은 여러 개라 내가 짐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그 여자애가 들고 온 모든 짐들은 호주에서도 다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짐들이 너무 많아 수화물 추가 요금까지 꽤 지불해서 사실 따지고 보면 호주에서 새 거 사는 거랑 똑같은 셈이 됐다. 내 계산으론 다른 답이 나오는 공식이지만 그 여자애가 한국산 쓰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면 여자애의 답이 정답인 거다.

그래도 딱 한 번만, 거북이처럼 짐을 내가 들고 다니는 집이라 생각하고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물건만 줄여도 많은 것으로부터 해방된다. 물건이 줄어들수록 더 풍요로워지는 기분이 어떤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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