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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항 Apr 03. 2021

여행의 색

2021년 4월 2일

모든 사람들이 각자 딱 두 가지 색 만 볼 수 있다면 어떤 색을 고를 것인가. 나는 주저 없이 검은색과 흰색을 고를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색은 파란색이지만 파란색을 고르지 않은 사람들과 파란색을 얘기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진을 찍을 때 너무 많은 색은 오히려 집중에 방해가 된다. 그때 세상에 두 가지 색만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가끔은 흑백사진으로 사진의 색을 다 지워버린다. 그러면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10년 넘게 사진을 찍다 보니 시야에서 색깔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색깔들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누구보다 더 관심 있다고 자부한다. 가끔은 영화나 노래, 사람들도 색깔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자주색 같아.”, “저 사람은 뭔가 연두색 느낌인데?”. 성격, 분위기, 전반적인 느낌을 종합 해 다가오는 색의 느낌이 있다. 그게 사람마다 다 다르고 음식, 영화, 노래, 나라마다 느껴지는 색이 있다.

왜냐고 물어보면 이유가 꼭 있어야 믿을 것 같은 상대방 앞에서 방금 막 지어낸 장황한 설명들을 늘어놓는다. 한국을 스틸블루, 러시아를 회색, 인도를 갈색으로 나 혼자 정해 놓았지만 이유는 없다. 그냥 나한테 그렇게 느껴진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는 길거리 상점과 호객행위에 대한 규제가 있다. 그래서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아무것도 없고 조금 심심하다. 그 느낌이 북적거리는 아시아에 있다가 러시아로 간 나에겐 회색으로 다가왔다.

여행에 색을 입히면 건물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느라 가끔은 건축가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사람들의 첫인상을 관찰하느라 모르는 사람들의 인사를 수도 없이 받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가 오면 하늘은 파란색이 아닐뿐더러 해가 기울어짐에 따라 바뀌는 눈앞의 여러 가지 색들을 놓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나도 특정한 색으로 정의되면 좋겠지만 나도 내가 아직은 검은색과 흰색 같다. 이유는 없다. 그래서 그냥 흰색처럼 아무 색이나 부어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라고 방금 막 지어낸 장황한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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