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월 4일
나는 90년대에 태어났는데 80년대 노래와 영화를 좋아하고 그 시절 사진 스타일을 동경하고 종이책과 손글씨를 편애하며 계속해서 옛 추억 물건을 찾는 사람이다. 옛 것을 소중히 여기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무언가 후회되는 일이 있어서랬다. 그냥 미화된 기억들을 추억하며 잊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나는 손편지가 주는 감성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친구들한테 받았던 손편지들을 아직까지 들고 있는데, 글씨체와 완벽하지 않은 문장들이 주는 그 시절만의 아련함이 있기 때문이다. 길게 쓴 메시지의 감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문자나 카톡은 금방 지울 수 있고 보관하고 싶으면 평생 할 수 있지만 손편지는 기억하지 않으면 어디 뒀는지 잊어버리기 때문에 아쉬움과 여운이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엽서 보내는 걸 좋아한다. 사실 정말 귀찮은 일이다. 엽서를 사고 그 작은 칸을 알차게 써 보고자 머리 짜내 꾹꾹 눌러쓰고 우체국을 찾아 한참 돌아다닌 뒤 언제 도착할지 모를 편지를 부치는 일. 정말 수고스러운 일이지만 해외에서 몇 달만에 도착한 엽서를 받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사람이 이런 고생을 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닳을 대로 닳아버린 그 나라 냄새가 담긴 엽서를 받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벅차오른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하며 엽서를 보내 준 사람과의 인연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소모품은 사용할수록 의미가 퇴화되고 받았을 때의 감동이 옅어지는데, 엽서는 볼수록 의미가 깊어진다. 그 나이 때의 감성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어떤 선물보다 갚지다.
6년 전 내가 보냈던 엽서를 아직까지 책상 유리 사이에 끼워 두신 우리 부모님만 봐도 그렇다. 다시 읽어보면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의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당시 내가 그 지역에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한테 주어진 모든 것이 어렸던 나게에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는지 알 수 있다. 보냈던 나뿐만 아니라 받은 부모님마저 절대 버릴 수 없는 기념품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