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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항 Mar 30. 2021

배낭이 무거운 이유

2021년 3월 29일

 방은 어렸을 때부터 물건들로 가득  있었다. 배송비를 줄일 거라고 미래에 필요한  까지 예측  한꺼번에 쇼핑  놓은 것들, 세일  쟁여놓은 화장품들, 여기저기 여행을 갔다 오며 모은 기념품들, 도대체 언제 샀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잡동사니까지. 물건이 별로 없는 부모님의 눈엔  방은 항상 치워도 치워도 깨끗해지지 않는 방이었다. 소모품이  떨어져  즈음엔 또다시 사재기를 해서 물건들로 방을 꾸역꾸역 채워 넣었다. 마치 버리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처럼. 심지어 쇼핑 좋아하는 여동생과  방을 써서 우리 방은 사람보다 물건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방이 되었다.

첫 번째 배낭여행을 가기 전 짐을 싸야 하는데 장기여행이 처음이라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인터넷에서 ‘배낭여행 준비물’을 검색해 최대한 내가 필요한 것에 맞춰 짐을 쌌다. 포켓나이프, 만년다이어리, 빨랫줄, 자물쇠 등등 55L 배낭을 가득 채웠다. dslr카메라가 들어있는 보조가방까지 15kg 정도 했었다. 25살 때여서 가방을 들고 땡볕에 하루 종일 걸어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계속 지역 이동하며 여행하는 게 부담스러워졌고 나중엔 짐 싸기 귀찮아서 지역 이동 안 하고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이상한 합리주의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한 곳에 오래 머물어야 진정한 여행이야”. 맞는 말이지만 이유가 타당하지 않았다. 여행하며 만났던 사람들이 일기는 폰에 쓰면 되지 왜 무거운 다이어리를 굳이 들고 다니냐 해도 손글씨가 좋다며 책 보다 무거운 다이어리를 포기하지 못했다. 동생이 중간에 같이 여행하러 왔을 때도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들을 사서 포켓나이프를 어떻게든 사용했다. 사실은 필요 없는 물건들이었지만 필요한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이고 지고 다니며 내가 나를 고문했다.

인도에서 어떤 한국인 언니랑 친해져 몇 달을 같이 여행하게 되었는데, 몇 달간 그 언니의 짐은 초등학생 수영가방처럼 생긴 투명하고 작은 백팩이 전부였다. 6년이 지난 아직까지 언니의 모든 짐을 다 기억한다. 아이폰4, 충전기, 샴푸, 속옷 1, 모자, 여권. 인도 사람들이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처럼 언니의 짐은 무소유 그 자체였다. 하지만 몇 달간 언니가 무엇이 필요해 보이거나 부족해 보인 적이 없었다. 사진에도 욕심이 없었던 언니는 우리가 찍어 준 사진을 메일로 받았고 로션을 바르지 않아 얼굴이 갈라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지역 이동을 할 때도 우리가 짐과 사투를 벌일 때 혼자 여유롭게 밖에서 차를 마셨고, 우리처럼 짐을 다른 곳에 싣어야 해서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지도 않았다. 사실 우리는 모든 물건을 원해서 가진 것이지 정작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합리화로 인해 필요한 짐들 때문에 많은 시간과 체력을 낭비했다.

동생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 동생이 메고 왔었던 35L짜리 작은 배낭으로 바꾸고 큰 배낭은 동생 편으로 보냈다. 필요 없는 짐들은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동생한테 부탁 해 한국에 다시 차곡차곡 쌓아뒀다. 그렇게 짐을 9kg로 확 줄였다. 하지만 오랜 여행에 피로해진 어깨는 가벼워진 배낭에 적응하지 못했는지 여전히 무겁다고 느꼈다. 그제야 나는 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짐은 우리가 짊어지고 다니는 것, 나의 업보였다. 물욕이 많으면 짐의 무게는 늘어나고 당연히 그걸 들고 다녀야 하는 나도 힘들어진다. “내가 편해 질려면 물욕이 없어야 하는구나”. 더 많은 짐은 편리함이 아니라 스트레스만 준다. 들고 온 카메라가 고장 나지는 않을까, 다이어리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로션 다 쓰면 또 어디서 사야 하나. 처음부터 들고 오지 않으면 하지도 않을 고민들이었다.


내 어깨를 한껏 짓누르던 업보의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 방법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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