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지 못함에 대한 자기 성찰
쌀쌀한 날씨에 산책을 포기하기도 싶었다. 그래도 그냥 걷자는 심정으로 거리엘 나섰다. 익숙한 거리들을 따라 걸었다. 매일 걷는 그 거리다. 다를 것 하나 없는 거리다.
그런데 오늘은 그 거리로 인해 새겨진 흔적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흔적들을 따라 걸었다. 흔적은 과거의 나, 과거의 시간, 과거의 상처다. 어떤 흔적들인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 흔적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왜 그 흔적을 따라 걷는 지다.
흔적에 따라 감정이 휘몰아쳤다. 기억 속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고, 수없이 오고 갔다. 분명 나는 익숙하고 다를 것 없는 길을 걷고 있지만 길 위에 있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나의 시간을 살고 있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괴롭고, 쓰라리고, 아팠다.
나는 어떻게 나일 수 있는가? 나는 내 존재답지 못한 것 같다. 나는 나의 시간도, 공간도 살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 나는 나인 것 같지 않다. 그래서일까 나라는 존재가 불편하고 싫었다. 정말 그랬다. 어찌 보면 나는 나라는 성을 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성은 쌓으며 나를 의지하고, 무언가 나를 도와줄 사람들을 의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나라는 성은 진짜 나라는 성이 아니었다. 그래서 높이 쌓을수록 헛헛했던 것은 아닐까? 지난 번 아웃, 탈진으로 그 성조차도 무너지고 말았다. 남김없이 말이다. 무너져 헛헛한 마음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다. 그럼에도 확실한 하나는 지금 걷고 있다는 것이다. 나답지는 못하지만 나로서 걷고 있다. 나의 시간, 공간 속에서 걷고 있다는 거다. 그 존재가 바로 나다. 부정할 수 없는 나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대화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왜 나인가?'
왜라는 질문으로 나 다움을 찾았다.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다.
'왜 나여야 하는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냥 말없이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다시 토대를 세워야 한다. 기초를 닦아야 한다. 이러저러한 생각 속에서 그 토대를 세우는 일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더 이상 다른 무엇으로 그 토대를 세울 수 없다. 나 다움으로 세워야 한다. 창조 목적에 따라, 목적답게 세우고 싶다. 반드시 나일 필요는 없지만, 나여야 하는 일을 하고 싶다. 나여야 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