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무시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그 속에 더 단단히 갇힌다고 해요."
눈이 펑펑 내린다. 정말 펑펑 내린다. 그래도 걷고 싶어서 우산을 쓰고 거리로 나섰다.
뭐 눈 오는 거리도 아주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정말 난 뭘 몰랐음을 깨달았다.
아... 눈 올 때 걷는 거는 낭만적이지 않구나...
우산을 써도 계속 눈을 맞아야 하고, 거리는 눈이 녹아 지저분하고, 차들은 왜 이리 성이 났는지 빵빵대고...
바로 걷는 것을 포기했다.
뒤돌아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포테토스틱과 바나나맛 우유를 샀다.
이제 아지트로 가자.
전기차를 구매한 이후 난 나만의 아지트를 얻었다. 예전에는 차 매연 냄새가 싫어서 차에 오래 있지 않았다. 차 시동을 켜야 냉난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기차는 시동을 끄고도 냉난방이 가능했다. 사실 전기를 쓰는 거니까 시동을 켜나 끄나 큰 차이가 없겠지만 적어도 차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차 엔진 소리들도 없어서 조용했다. 주변 소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차 자체 소음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충전만 되어있으면 어디든 내 아지트가 됐다. 간단한 간식을 사들고는 차로 향했다. 그리고 드라마 한 편을 보았다.
"과거는 무시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그 속에 더 단단히 갇힌다고 해요."
첫 대사였다. 거기에 나는 무너졌다.
나는 늘 과거에 대해 무시했었다. 별 대수롭지 않다고, 난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나이를 먹고 나서야 그것이 괜찮지 않음을 깨닫는다. 괜찮지 않은 거다. 괜찮으면 안 되는 거다.
난 그렇게 괜찮지 않은 상태로 지금껏 살았다. 평소에는 괜찮아 보이다가도 어떤 한계 상황에 이르면 괜찮지 않음이 송곳처럼 튀어나왔다. 가끔은 나라는 이상과 절망이 이중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나와 속에 꽁꽁 숨겨둔 나는 늘 괴리감이 있었는지 모른다.
청소년 시절, 난 늘 착해야 했다. 착한 모습이어야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했다. 사실 충족해 주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부모님이다. 다행히도 아주 어린 시절의 부모님은 나를 충분히 사랑해주었지만, 가정의 깨어짐으로 물리적으로, 감정적으로 사랑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난 늘 공허했다.
그렇다고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마음의 공허는 나를 공부하게 했고, 더 열심히 사역하고 일하게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게 했다. 무엇보다 마음의 구멍들에 초월적인 사랑이 넘치도록 채워졌다. 문제는 그 구멍이 다 메워지지 않았다는 거다. 조금씩 조금씩 새어 나와서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계속 채워도 늘 똑같았다.
그 과거에 생긴 구멍이 다 메워졌다고 느꼈지만 그렇지 않았다. 미세한 균열은 다시 구멍을 내었다. 그걸 이제야 느낀다. 과거를 무시하며 살았던 결과다. 철저하게 외면했던 결과다.
과거의 나, 외면하고 싶고, 가면을 쓰고 살았던 나, 그 나를 다시 직면해야 한다. 그렇다고 억지로 하고 싶지 않다. 더디 가더라도 과업을 수행하는 것처럼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철저히 마주해야 한다. 과거의 시간과 과거의 나와 마주해야 한다.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기억나지 않는, 가물가물한 시간 속으로 향한다. 지금 나보다 어린 부모님을, 솔직히 시간이 너무 지나 기억나지 않는 나를 마주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지 않아. 괜찮은 게 이상한 거야. 누구나 다 힘들지만 지금은 네가 제일 힘든 거야. 그러니까 괜찮지 마. 떠나지 말라고, 곁에 있어 달라고, 그냥 그렇게 해달라고 말해도 돼.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가정이 깨어졌어도, 회사가 부도 나도 그냥 곁에서 있어 달라고 해. 그냥 같이 이겨내자고 말해도 괜찮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넌 소중하고 단 하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부모님이라고 말해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