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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ㅅㅇ Jan 13. 2022

산책하다, 길을 잃었다.

생각하며 걷다 보니 길도, 나도 잠시 잃어버렸다.

날씨가 춥다. 그래서 패딩을 입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중무장했다. 그래도 춥다. 그래서 오늘은 햇살을 따라가기로 했다.


햇살을 마주하고 한참을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쳐다본다. 창피하다.

그래도 모자도 쓰고 마스크도 써서 다행이다.


오늘 생각의 꼬리를 물고 중얼거린 이야기는 무기력함이다. 무언가를 이토록 하기 싫었던 적, 그리고 무언가를 이토록 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싶다. 문제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다.


말로 중얼거리니 이상하다. 

이런 생각은 해보았지만 말로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좀 쑥스럽다. 스스로에게 말이다. 

말로 해보지 않아서일 것이다. 굳이 말로 하지 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말을 하니 나 스스로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무슨 상관인가!

나에게 내 마음을 말하는 게 뭐가 어색할 일인가!

그럴 필요 없음을 깨닫고 중얼중얼 말을 건넨다. 


생각과 말은 차이가 있다. 

생각은 속도가 너무 빠르다. 말은 그에 비해 느리다. 

생각은 우주와 같아서 무한히 팽창되기도 하고, 

때론 작은 보석함 같아서 그 틀에 갇히기도 한다. 


그런데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다. 

표현하기 위해서는 몸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생각이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말을 한다는 것은 

생각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에 꺼내 놓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산책을 하는 40~50분가량

생각을 꺼내 놓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계이기도 하고 정리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무기력에 대해 그냥 막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왜 그토록 하고 싶지 않은가!

난 왜 그토록 하고 싶은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

그 기저는 무엇인가!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처음에는 솔직히 정리되지 않았다. 

이런 산책을 해야 하는가 싶을 만큼 말이다. 


그런데 그 팽창하는 말들 속에서

작은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무기력은 그저 피상적인 핑계였다. 

하기 싫은 마음보다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마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마음,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 마음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면서 나의 마음에 묵혀있던 감정들과 욕망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문득 생각했다. 

그 원하는 것들이 진짜 나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까?

내 마음에 생긴 빈 공간을 채워줄 수 있을까?


그때 잠시 산책을 멈췄다. 

내가 어디쯤 왔는지 그제야 알았다. 


오늘 난 길을 잃었다. 


어찌 보면 익숙한 거리지만 

난 길을 잃은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고,

그럼에도 그 길을 걸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계를 보니 돌아갈 시간이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많은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서는 것.

시간 안에 돌아갈 수 있도록 

왔던 길을 되짚어 보는 것.

그리고 걷는 것.


다시 돌아가자.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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