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ㅇㅅㅅㅇ Apr 25. 2022

좋은 아버지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아버지이고 싶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렇다고 가난이 불편하거나 창피하지 않았다. 가난이 무엇인지 몰랐고, 다른 무엇에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남의 눈치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가난보다 더 눈치를 보았던 것은 부모님이었다. 

한 번은 아버지와 드라이브를 갔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작은 촌 동네였다. 그곳 작은 다방이 목적지였던 것 같다. 처음 들어가 보는 곳에 처음 보는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밖에서 뭐 사 먹으라며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셨다. 그리고 나는 동전 하나를 들고 낯선 길을 걸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곳은 나에게 낯선 어딘가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나는 한 가지만 생각났기 때문이다. '엄마'

그때부터일까? 다툼은 싸움이 되었고, 집안 물건들이 깨지고, 마음도 산산조각 났다. 다툼의 시작은 외도였지만 그 본질은 경제였다. 아버지는 외도를 시작으로 가정의 경제를 하나도 신경 쓰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 몫은 고스란히 어머니가 지셔야 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으셨고, 남의 일을 하시며 우리를 먹여 살리셔야 했다. 겨우 30대 중반이셨던 꽃다운 나이에 말이다. 

청소년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은 거의 없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이 캠핑을 가기고했고, 외가댁에 놀러 가기도 했는데. 청소년 시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 고2 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고모와 사업을 시작하셨다. 건축에 쓰는 거푸집을 만드는 회사였다. 사업은 잘 되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는 연매출 1억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당시 아버지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돈이었다. 그러나 1년 뒤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IMF사태. 

아버지는 망하셨다. 어떻게 망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망했고,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연락도 되지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망했다고 나에게 돌아오는 불편함은 없었다. 어차피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이 불편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철이 덜 들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모질었다 싶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어하셨을지, 그것 때문에 신불자로 어떤 고생을 하셨을지 아무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그저 나만 생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 참 철없이 말이다. 20대에 나는 그 당시에 아버지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것은 자초지종이다. 왜 그랬고, 왜 그러지 못했는지. 그런데 30대에 나는 조금 달랐다. 아버지에게 그저 "주한아 아빠가 요즘 참 힘들다." 그 한 마디였다. 그저 그 한 마디면 가난한 것도 사업이 망한 것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짐을 감정으로 나마 나눠지고 싶었다. 그런데 40대가 된 지금, 가장이라는 무게가 느껴진다. 그때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버지만의 아픔이 아닌 시대의 아픔이었고, 누구도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피해가 아들들에게 가지 않도록 하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숨어 사셨던 것 같다. 

당시 아버지보다 더 나이 먹은 지금, 나도 아버지라는 모습으로 잘 서 있는지 돌아본다. 시아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말이다. 나는 아버지라는 비빌 언덕이 없어 불안했다. 그래서 늘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러나 스스로는 한계가 있다. 나이 들 수록 더 확연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미비하다. 그렇지만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나의 자녀에게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 그래서 세상에서 힘들 때 쉬어갈 수 있고, 광야를 만났을 때 목을 축이고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솔직히 좋은 아버지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좋은 아버지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 노력은 혼자 하는 노력이 아니다. 혼자서 좋은 아버지일 수 없다. 아내와 시아와 소통하며 하는 노력이어야 한다. 그래서 혹시 닥쳐올 고난도 함께 이겨내고, 기쁨도 함께 누리기 원한다. 그렇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가고 싶다. 


이전 14화 보리차랑 산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