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보리차가 생각나는 오늘
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그래서 옷차림도 가벼워졌다. 그래서 산책을 나서며 한 가지를 챙기기로 했다. 텀블러다. 누구나 한 개쯤 가지고 있을 스벅 텀블러에 보리차를 담았다. 이것이 오늘 산책 벗이다.
평소 차를 좋아하기에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다. 날씨가 쌀쌀할 때는 물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었다. 무언가를 들고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기도 해서였다. 그런데 날씨가 따뜻해지니 갈증이 났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텀블러였다. 그저 오래된 스벅 텀블러가 차에 있어서였을까? 물을 사 먹기 아까워서였을까? 아무튼 텀블러에 보리차를 담아 나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좋지만 오전에 마셨던 보리차가 더 끌렸다. 구수하고 살짝 쌉싸름한 맛이 좋았다. 어린 시절 냉장고 안 오렌지 주스 유리병에 담겨 있던 보리차가 생각났다. 입을 데고 마셨다고 엄마에게 혼나던 기억도 말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성격이 급했는지, 아니면 컵에 마시기 귀찮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병에 담긴 보리차를 거의 다 마시고서야 갈증이 풀렸다. 그 차가움에 머리가 띵해져서야 병을 내려놓았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혼내시면서도 웃음이 나시기도 했었다. 그날은 영락없이 가스레인지 위에 누런 큰 주전자가 올려졌다. 그리고 온 집안은 보리차 향으로 가득했다. 언젠가는 누런 큰 주전자 대신 스탠인리스 주전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주전자 입에 이상한 뚜껑이 있었다. 무슨 용도인지는 물을 끓이면 알 수 있었다.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물이 끓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였고, 마치 하모니카를 막 불 때 나는 소리였다. 참 편리하고도 아날로그 했다. 그런 정서가 보리차에는 묻어있다. 얼마 전에 맥심 카페에 갔었는데, 그때 시음행사로 보리차 티백을 받았다. 커피를 무려 3잔을 마셔서 아내와 둘이 갔었는데 티백 20개 들이 팩을 3개나 받았다. 가끔 보이차를 마시며 곁들여 마시기도 하는데 그 맛 때문일까 향수에 젖어 멍할 때가 있다. 오늘 걸으면서도 그랬다.
코로나 때문에 산책하며 물을 마시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최대한 사람들 없는 곳에서 살짝 마스크를 내리고 마셔야 했다. 마스크 내리는 것이 혹여나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까 해서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행동들이 지금은 누군가에게 불편함과 실례가 된다. 누군가에 대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행동에 대해 조금 더 세심해진 것은 아닐까? 그런 소소한 변화들이 너무하다 싶기도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좋은 변화이기도 하다. 가령,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우다. 지금은 길을 다니며 거의 부딪히지 않는다. 방역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더 살펴야 한다. 기침을 하는 것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이런 변화들이 마냥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주변을 살피고 피해를 주지 않고자 하는 배려로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걷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생각보다 물이 빨리 없어졌기 때문이다. 향수에 젖어서일까? 아니면 날씨가 더워서일까? 아쉬웠다. 그래서 생각했다. '돌아가야겠다.' 조금 남은 보리차는 아껴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도착하고 나서 마지막에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산책은 과거로의 여정이었다. 억지로 끄집어낸 과거가 아니었다. 그 맛과 향이 견인한 추억이고, 향수였다.
이제 도착했으니 남은 보리차를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