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슬플 때 그림책을 펴

짧은 이야기 속 깊은 메시지

by 조이엄



그림책, 왜 좋아해요?

짧은 이야기 속에 깊은 메시지가 있어서요.

좋은 그림이 많아 펼치기만 하면 갈 수 있는 전시장이 되어서요.

치명적인 귀여움으로 마음을 녹여서요.

현실을 긍정적으로 살아낼 힘을 줘서요.






모름지기 모든 사람은 "응애"하고(표현이 그렇다는 거다.) 응석 부릴 수 있는 자신만의 안식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응애 이론'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 한 명씩을 품고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순간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 아이가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사회생활을 하던 중 튀어나온 아이는 문제아 취급을 받고, 혼자 있거나 편한 사람들과 있을 때 튀어나오는 아이는 편한 환경 안에서 마음껏 응석 부릴 수 있다.


내 안의 어린아이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날이 있었다. 때는 3년 전, 막 취업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나는 매일이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멀리 바늘구멍은 어째 점점 더 좁아지는 것 같았고, 원하던 일을 할 수 있을지 나에게 기회가 오긴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불안이 쌓이던 어느 날, 어디 하소연할 곳 없이 묵혀두기만 마음이 안식처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찾은 안식처는 생뚱맞게도 '그림책'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책 읽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어머니는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 아름 빌려다 주시곤 했다. 나이가 찰수록 빌려오는 책의 페이지 수는 늘어났고, 책 권수는 줄어들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그림책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만화책을, 고학년 때는 나름 두께가 있는 일명 '어른 책'을 읽기 시작한 덕분이다. 그런데 스무 살을 훌쩍 넘긴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림책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 날 잡지에 나온 그림책 카페를 유심히 들여다보다 이곳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말에 찾은 그림책 카페는 덩굴로 둘러싸인 건물 외벽과 곳곳에 위치한 식물 덕분에 싱그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커다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맞이해주고 있었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자유로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한가득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느꼈다.


'찾았다, 내 안식처!'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카페 사장님은 학부모와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러운 코멘트와 함께 몇몇 그림책을 추천하고 있었다.


센척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해!'라는 이름의 감정조절에 관한 책을, "엄마 나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엄마 왜 안 와'라는 애착 형성에 관한 책을 추천하고 있었다.


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았다. 찰나의 순간에도 화를 내는 것과 참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이득인가를 따져보는 비릿함과, 엄마를 찾는 것보다 술을 더 자주 찾는 씁쓸함을 두루 갖춘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차마 이 책들에 손을 뻗지 못했다. '과연 여기에 내가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존재적 불안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그때, 마침 눈에 띈 '불안'이라는 이름의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사랑, 행복, 기쁨... 과 함께, 불안도 내 감정"이라는 첫 페이지의 문장이 인상 깊었다.


책 속에서 불안은 커다란 새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미지화한 것이다. 주인공은 커다란 새의 모습에 겁에 질려 문 뒤로 숨어보지만 머릿속은 온통 새 생각뿐이다. 이는 불안을 마주하고 겁에 질려 도피해 보지만 결국 불안에 잠식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가 용기를 내 새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니 새의 모습이 작아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새와 편안히 공존하게 되었다.


"아직 네가 두려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너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너와 함께 고민하고 내 기분도 말할 수 있지."


라는 말은 마침내 불안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취업을 준비하느라 매일 커다란 불안에 쫓기던 나에게 책의 한 글자 한 글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간결한 메시지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그려지고 있었다. 불안을 받아들이라는 텍스트를 놓고 이해하지 못하던 어른은 가고, 마음속 어린아이만 남아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림책을 찾게 된 건 불안에 쫓기던 내가 어릴 때 느꼈던 평화로움을 기억해 내곤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실제로 그림책을 읽으며 큰 위로를 받았고, 뜻하지 않게 나를 잡아끄는 매력을 느꼈다.


잠시동안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준 그림책 카페에서 현실로 돌아갈 시간. 카페를 찾은 아이에게 하이톤의 목소리로 "안녕!" 하며 반겨주시는 사장님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 괜히 친근하게 웃으며 인사를 드렸다. 예상과 달리 굉장히 어색하게, 무뚝뚝하지만 예의를 갖춰 대해 주시는 그의 모습을 마주하곤 성인으로서 나의 위치와 내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다시 냉철하게 고찰하며 문을 나섰다.


그렇게 마음의 안식처를 찾다 그림책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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