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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Aug 01. 2023

반딧불이의 초대

청수곶자왈 반딧불이 축제

조용한 동네 한 구석, 일 년에 한 번 이 기간에 유독 북적이는 숲길이 있다. 반딧불이 축제가 열리는 청수리 곶자왈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니 해질녘 하늘이 옅은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인 반딧불이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에 딱 맞게 도착해 청수 다목적 회관 앞에 위치한 간이 천막에서 안내를 받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번 축제에는 총 3개의 코스가 있었는데, 예약한 B코스는 버스를 타고 7분 정도 이동한 후 걸어 돌아오는 코스였다.


반딧불이라니. 도시에서 자란 내게 반딧불이는 유니콘이나 해태처럼 상상 속 동물 같은 존재였다. 어렸을 때 꽁무니에서 불빛을 내는 반딧불이가 있다는 것을 책에서 읽고 언젠가 반딧불이를 볼 수 있기를 소망해 왔다. 한참 전부터 미리 일정을 적어두고, 티켓팅을 하듯 시간 맞춰 예약하는 유난을 떤 끝에 드디어 청수 곶자왈 반딧불이 축제에 입성한 것이다.


버스는 시작 시간인 8시가 되자 칼같이 출발했다. 곧이어 우리를 이끌어 줄 가이드이자 청수리 마을에 살고 있는 어르신이 마이크를 잡고 반딧불이에 대한 소개와 함께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반딧불이는 크게 두 종류로, 5-6월에 보이는 운문산 반딧불이와 7-8월에 보이는 늦반딧불이다.


반딧불이는 향에 민감해서 향수를 뿌리지 않고 오는 것이 좋고, 작은 불빛으로도 교란될 수 있기에 휴대폰 불빛이나 작은 불빛도 조심해야 했다. 그는 숲 안이라 추울 수도 있으니 겉옷을 챙겨 오면 좋다는 말도 했다.


‘주의해야 할 점을 도착한 후 알려주는 법이 어딨어!’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연히 이 모든 조건을 갖춘 나는 안도했다. 반딧불이 클럽 앞에서 무사히 입장을 허락받은 기분이었달까.


한편 반팔을 입고 팔에는 밤이면 야광으로 빛나는 시계를 차고 축제에 함께 온 옹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두리번거리며 팔목을 가렸다.






버스에서 내려 숲길 입구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서자 밤이 내려앉기 직전 푸른빛을 간직한 하늘을 배경으로 청수리 어르신이 입을 뗐다.


“곶은 제주어로 숲이라는 뜻입니다. 화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이 흐른 길이기도 합니다. 이곳 청수 곶자왈은 대한민국에서 평당 반딧불이가 제일 많은 곳이에요.


앞으로 반딧불이를 보러 들어가게 될 텐데,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반딧불은 암컷, 날아다니는 반딧불은 수컷입니다. 함부로 만지지 마시고요.


한 가지 당부드릴 점이 있다면, 휴대폰은 꺼 두시거나 무음으로 해 두시라는 겁니다. 곧 어두워지겠지만 눈이 어둠에 익으면 길이 보입니다. 그런데 휴대폰을 한 번 꺼내면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든요. 잠시 휴대폰은 내려두고 자연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네에”하고 대답하는 스무 명 남짓 한 사람들의 눈은 이미 숲길 안쪽 반짝거리는 한 두 개의 불빛을 향해 있었다. 어르신이 이야기를 하는 와중 뒤쪽으로 불빛이 한 번 반짝일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 숨죽인 소란이 일었다.


곧이어 다 함께 숲길을 걸어 들어갔다. 어둠 속 들리는 건 조용한 대화 소리와 자박자박하는 발소리뿐. 청수리 어르신 말씀대로 곧 눈이 어둠에 익었다.


반딧불이들이 하나둘 보이더니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많아졌다. 맑은 날 하늘을 올려다보면 유난히 밝은 별들이 보이는데, 반딧불이의 불빛은 그중 제일 밝은 별이 빛을 잠시 모았다가 밝히고 또 빛을 모으듯 점멸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옹의 야광시계는 점멸하는 별빛들 사이에서 다른 반딧불이를 교란시킬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았고, 반딧불이가 내뿜는 빛에 유혹당하고 있는 건 우리였다.


2년 동안 유충 상태로 기다린 끝에 한 달 남짓한 짧은 삶을 살게 된 반딧불이들은 짝을 찾아 열심히 발화했다. 숲을 지나는 불청객이 있건 말건 수컷 몇 마리는 암컷을 찾아 유유히 일행 사이를 가로질렀다.


눈앞을 지나는 반딧불이를 보면 아이든 어른이든 할 것 없이 홀린 듯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반딧불이 가는 길목을 받쳐주었다. 잡을 수 없고 잡아서도 안 되지만 잠시나마 그 불빛을 손 위에 아른거리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길가 양쪽으로 각자의 리듬에 맞춰 점멸하는 불빛에 연신 감탄하느라 길의 절반은 넋을 놓고 걸었다. 길의 마지막쯤, 앞장서 길을 안내하던 청수리 어르신이 잠시 멈춰 서더니 이제부터 가장 반딧불이가 많은 구간이 나온다고 했다.


우거진 나무가 하늘을 가려 자연이 만든 통로 같은 느낌을 주는 길 양옆으로 반딧불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걷다 보니 어느새 일행의 가장 앞줄에 서 있던 나와 옹은 처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신인 가수 같은 느낌으로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여기 좀 봐!“


“여기도 진짜 많다”


“저기 좀 봐봐”


흩뿌려진 별빛들을 눈에 다 담고 싶어서 조바심이 났지만 걷다 보니 어느새 멀리 시작점인 청수 다목적 회관이 보였다. 길가의 가로등과 간이 노점상을 밝힌 조명들 뿐일 텐데, 어둠에 익었던 눈으로 보니 밤의 야구장이 발하는 불빛만큼 밝았다.





꿈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잠시 지친 다리를 쉬게 하려 청수 다목적회관 바로 옆 카페에 들렀다. 어두운 저녁 유일하게 불을 밝힌 카페에는 우리 외에도 먼저 온 손님들이 꽤 있었는데, 청수리 이장님 일행과 제비 두 마리였다.


우리에게 음료를 내어준 뒤, 카페 사장님 부부는 돈을 낼 생각이 없어 보이며 심지어 잠시 한 눈을 팔면 가게에 똥을 지릴지도 모르는 불청객을 쫓아내기 위해 온갖 집기를 동원해 허공에 손을 내젓고 있었다.


몇 번의 몰이에도 제비가 나가지 않자 그들은 점차 더 길고 다양한 도구를 찾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던 이장님은 점잖게 유자차 몇 잔을 추가로 주문했고, 사장님 부부는 한 손에는 빗자루를, 다른 한 손에는 메뉴판을 들고 각기 다른 각도로 팔을 휘두르며 주문을 받았다.


각고의 노력 끝 마침내 제비가 자연으로 돌아갔고 빗자루와 메뉴판도, 카페 사장님 부부도 제자리를 찾았다.


우리에게는 생경한 삶의 이벤트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던 듯,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했다.






그 무난한 태도가 일깨워 준 것은 우리의 축제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이라는 사실이다.


몇 년 전부터 청수리 마을 사람들은 반딧불이 축제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축제 기간 동안 80세 이상 노인이 대다수인 마을 사람 절반이 동원된다. 늦어도 9시면 잠들고 새벽에 기상하는 생활 습관을 지닌 그들에게 반딧불이 축제는 밤늦게까지 잠 못 이루게 하는 번거로운 연례행사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축제에서 일상에서 벗어난 경험과 체험을 하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일탈은 누군가의 일상과 희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축제는 특이했다. 상시 프로그램이 따로 없어 코스를 미리 예약한 사람들만 즐길 수 있었고, 사람들을 모으기 위한 홍보도 따로 없었다. 예약한 당일에는 안내 문자가 없어 직접 홈페이지에서 가야 하는 곳과 주의사항 등을 확인해야 했다.


주의사항을 도착해서 알려주는 것이 어딨냐고 속으로 불평했지만 미리 확인했어야 하는 건 나의 몫이었다. 축제라고 이름 붙었지만, 청수리 사람들과 반딧불이의 일상에 초대를 받았던 저녁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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