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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Jan 15. 2023

적금 만기일, 세상에서 제일 작은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무심코 '한평생'이라는 단어로 글을 시작했다가 매번 슬그머니 이 글자를 지울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살아온 모든 날 중에서 내가 스스로를 축하해 주고 마음껏 기뻐하도록 내버려 둔 적은 합쳐서 채 열흘이 되지 않는 듯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중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싶으셨는지 한 명씩 불러 반에서 자신이 몇 등이나 하는지 성적을 일러 주셨다. 3등이라는 내 등수를 처음 들은 날, 나는 상상했던 것보다 높은 등수에 마음이 부풀었지만 내 앞에 있는 친구들을 궁금해하는 마음이 금세 이 부푼 마음을 앞질렀다. 그다음 시험부터 등수가 오르지 않았을 때는 지나치게 자책하며 내 노력과 성취를 깎아내렸다.


기부금을 모으는 봉사활동을 했을 때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남들보다 많은 기부금을 모아 칭찬을 받기도 했다. 기쁨은 찰나였지만 그럴수록 내일은 더 잘해야 하고 모레는 그보다 더 잘 해내야 할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원하던 회사에서 6개월간 인턴을 할 때는 그 기회에 감사해하면서도 이 기회가 끝나가는 것을 하루하루 초조해하며 인턴 기간의 절반이 지났을 즈음인 3개월 전부터 끝을 생각했다.


내가 더 단순한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눈앞의 작은 성공에도 순수하게 기뻐하고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듯 웃으며 알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사람들의 손뼉소리에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칭찬을 튕겨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1월 14일은 원래대로라면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그만둔 상태였고, 저축해 둔 돈이 떨어져 가던 차였기에 이 날은 나에게만큼은 절절히 기다려지는 적금 만기일이었다. 작년 이맘때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하며 첫 월급을 받고 바로 1년짜리 적금을 신청했다. 일을 하며 느낀 1년이란 속도에 비해 통장의 시간은 조금은 느리게 흐르는 듯 기다리기 애가 탔지만 결국 마지막 날이 왔다.


내 생일보다 더 기다려 온 그날, 적금만기일. 마침내 어젯밤 적금을 만기 해지하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주거래 통장으로 송금했다.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는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이 돈을 앞으로 어떻게 분배해 버틸 것인가 하는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문득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갔다 오는 길에 이 일에 대해 초를 붙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중요한 일이 끝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케이크에 초를 붙여 축하하곤 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도 그 사람처럼 나의 승리를 축하하는 작은 의식을 치르고 싶었다.


집에 와 짐을 풀고 뒹굴거리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케이크를 사러 가기는 늦은 시간, 얼마 전에 체한 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기도 했어서 집에 있는 것들 중 초를 붙일 수 있을만한 작은 것을 찾았다. 선물용으로 사고 남은 제주감귤 타르트가 있어 꺼내보니 생각보다 앙증맞은 크기에 1차 당황, 코팅된 초콜릿이 단단해서 초가 꽂히지 않아 2차로 당황했다.


어찌저찌 초를 꽂고 불을 붙였는데 기분이 묘하다. 내가 나를 위해 붙여준 첫 번째 불꽃은 생일날 남이 나를 위해 붙여준 불꽃보다 더 각별했다. 겸연쩍지만 축하해 마땅한 일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촛불을 마주하니 마음이 울렁였다.


그동안 갖고 싶은 거 덜 사고, 먹고 싶은 거 참으면서 잘 모았네, 수고했어.

앞으로 더 많은 축복과 행복, 행운이 찾아오기를 두 손 모아 빌며 초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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