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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혹의 우뇌 Jan 21. 2017

커피 단상

낭만을 담은 오지의 항료

"커피 한 잔의 향기가 세상을 바꿀지는 못할지라도, 그 세상에서 오는 우울함을 달래줄 때가 있다. 그건 차를 마실 때와는 분명 다른 기분이다. 이국의 풍경이 진한 갈색의 작은 물결 속에 환영처럼 흔들리고, 우리는 커피 한 잔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나그네가 마시는 오지의 향료이다."

- 김민웅 <자유인의 풍경>-‘커피와 지도’ 중


몇 년 전에 이메일을 하나 받은 적이 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지인이, 박사학위 지원을 해야 하는데 추천의 글을 긴급하게 써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일부 학교는 입학 과정에서 지원자들에게 담당교수나 직장 상사 같은 시니어급의 추천인뿐만 아니라, 동료급의 전문가에게 추천서를 받아올 것을 의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직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도 잘 맺고 있는지 점검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인과의 기억을 떠올려가며 추천서를 작성하여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소포를 하나 받았다. 소포 안에는 로댕의 입체 그림이 그려있는 엽서가 있었고, 간략한 감사 멘트와 함께 커피와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벨기에 여행 중에 생각이 나서 샀다는 내용이었다.


그 커피를 마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상적인 커피 한 잔은  나의 고민들을 구체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하지만 (가령 회사에서 잠을 깨기 위해 마시는 커피!), 사연이 담긴 커피는 낭만적일 수 있다는 거다.


어쨌든 필자는 그때 커피 한 모금에, 언젠가 홀로 방문했던 벨기에의 그랑플라스 광장 (Grand Place) 어디쯤에서, 한 껏 허세를 부리며 코트의 깃을 세우고 거리 음악사들의 연주를 들었던 한 때를 떠올렸으며, 그 커피 원산지의 작열하는 햇빛과 농부들의 땀까지 눈을 감고 한번 생각해보았다. 상상은 자유니까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 낭만을 담을 수 있는 게 비단 커피뿐이겠는가.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Grand Place 광장. (사진출처: http://www.brusselsnicetou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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