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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n Mun Apr 21. 2019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못생긴 여자애를 하나 달고서

‘오빠가 돌아왔다’는 김영하 작가님의 단편집이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제목의 단편에서 시작해 총 여덟 편의 다른 내용을 가진 소설들이 묶여있다.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묘사와 짧은 호흡들 덕분에 글을 읽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읽었는데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루한 비행시간을 지워버리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책의 재미와는 별개로 소설을 리뷰하기란 쉽지 않다. 좋은 소설이라는 느낌이 드는 글을 읽고 나면 대게 비슷한 잔상이 남는다. 적어도 내가 받는 잔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밝고 희망적인 모습보다는 슬프고 우울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읽은 ‘오빠가 돌아왔다’도 비슷한 느낌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리뷰를 작성하는 나 같은 독자는 작가의 감각적인 묘사를 생생하게 전달할 필력도 없고, 숨겨진 행간을 자유자재로 읽어낼 재간도 없다. 그래서인지 소설을 리뷰하는 것은 역시 어렵다.

 

좋은 소설들이 남기는 잔상이 슬프고 우울한 이유는 그것들이 우리가 쉽게 담을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주제는 이해하기도 쉽고 말하기도 쉽다. 행복과 긍정은 많은 수단과 방법으로 쉽게 공감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슬픔과 우울함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람마다 슬픔과 우울함의 정도가 다르다. 어떤 이의 슬픔은 다른 이의 일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이에게 우리의 슬픔을 쉽게 내비치려 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소설과 문학작품에 있어서 만큼은 우리는 슬픔과 우울함에도 관대 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공감받고 위로받고자 문학을 선택하는 것을 아닐까? 어쩌면 좋은 글들이 슬픈 잔상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들은 무작정 우울하지는 않다. 작자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공간들 때문일 것이다. 슬픔은 의도적으로 숨겼지만 유머는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독자와의 밀당을 하는 듯하다. 독자는 비어진 공간을 스스로 채워나가면서 이 책을 즐기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 난 뒤의 잔상은, 마냥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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