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부자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김지용 님의 에세이입니다. 개인적인 솔직한 이야기와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 약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진솔한 글들이 많았습니다.
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많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정신질환을 개인적인 나약함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적 시선이 만연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이런 사회적 시선에 맞서는 작가의 노력과 환자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독서를 하는 시간 만이라도 보이지 않는 타인의 아픔에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1.
정신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의학이란 학문 안에 이렇게 다른 세계가 있다니. 객관식 세계에서 유일한 주관식 나라를 만난 느낌이었다. 신기했다.
2.
귀에 꽂히듯 들어온 교수님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너넨 약 처방하려고 정신과에 왔니?” 아차.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정신과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1년 동안 약만, 약의 부작용만 신경 쓰며 사느라 잊고 있었지만 애초에 내가 정신과에 온 이유는 ‘마법처럼 신비한 무의식의 세계’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3.
내가 목격한 그의 모습은 ‘억압과 격리’라는 방어기제에 의한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살기엔 너무도 힘든 기억을 무의식 속 공간으로 다 밀어 넣은 것이다. 아예 의식하지 못하도록. ‘억압’의 방어기제다. 이유는 모르지만 깊숙이 숨겨놓았던 그 기억이 다시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이 과정에서, 그의 마음은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한 가지 기술을 추가로 사용했다. 바로 ‘격리’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은 기억하지만, 그 기억에 수반된 감정은 따로 분리시켜 무의식 속으로 다시 밀어 넣은 것이다.
4.
무의식은 언제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분쟁의 불씨를 없애려 한다. 문제는 ‘의식’과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한 방식에 따라 노력한다는 데 있다.
5.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해야 제대로 된 약을 받을 수 있을까. 내가 먹고 싶은 약을 받기 위해 어떤 증세를 강조해야 할까를 늘 고민합니다. 그것이 내 솔직한 마음입니다.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지만, 내 일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처럼도 느껴지는… 오늘 밤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도 나는 주치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습니다.
6.
정신과 의사들이 자기 모습은 가린 채 마치 모든 인생사에 통달한 현인처럼 가르치는 듯한 모습만 보여 온 것. 그것이 오늘날 정신과의 높은 문턱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
죽음의 목전에서 타인의 손에 이끌려 삶으로 돌아온 그 강렬한 경험은 그들에게 몇 가지 깊은 영향을 미친다.
8.
첫째는, 힘들어하는 나를 구원해줄 깊은 관계란 좀처럼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뼈아픈 현실을 정확히 포착한 점. 다음으로는 이미 사람이 두려워진 누군가가 그런 깊은 관계를 새로 만들려면 ‘진정한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잘 그려낸 점이다.
9.
우리 사회에는 정신 질환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 오해가 있는데,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라는 말이 가장 대표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