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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n Mun Jan 22. 2019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사람이 공간을 만드는게 아닙니다. 공간기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지금 살고 있는 신혼집 인테리어를 한참 고민할 때였다. 고민의 중심엔 거실이 있었다. 거실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까? 


1안은 ‘평범한 거실’이었다. TV를 한쪽 벽에 설치하고 TV장을 아래에 놓는다. 그리고 다른 벽면에 소파를 놓고 가운데 공간에는 작은 러그를 깔아본다. 흔히 보이는 거실의 모습이다. 2안은 ‘카페형 거실’이다. 한쪽 벽은 TV를 설치하고 TV장을 아래에 놓는다. 여기까지는 동일하다. 하지만 소파를 놓지 않고, 큰 테이블 거실 중앙에 배치한다. 테이블은 2인 가구에 비해 분에 넘치는 큰 6인용 테이블을 놓는다. 


2안 ‘카페형 거실’은 일상생활에 모험이 될 것 같았다. 그동안 거실은 당연히 소파에 널브러져 TV를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휴식’ 공간이었다. 책을 읽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는 ‘생산’을 위한 공간은 항상 카페였다. 만약 거실을 카페로 만든다면 거실이 휴식의 공간에서 생산에 공간으로 전환될 것만 같았다. 이게 과연 거실일까? 퇴근하고도 쉬지 못하는 공간이 된 걸 후회하지 않을까?


2가지 안을 모두 마음을 품고 인테리어를 위해 가구단지, 백화점을 전전긍긍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한 가구 디자이너 선생님을 만났다. 다른 판매원과는 달리 연세가 지긋하신 중년의 남성분이셨다.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중절모를 쓰고 계셨다. 1안과 2안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를 한참 지켜보던 이 중년의 남성분은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이 가구 디자이너라고 말하며 한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사람이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공간이 사람을 만드는 겁니다


가슴을 울리는 한마디(?!)에 우린 2안을 선택했다. 지금이 아니면 카페형 거실을 언제 가져볼까라는 생각과 공간을 카페로 만들면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선택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선택한 2명이 쓰기엔 턱없이 넓은 테이블이 놓인 거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공간은 나를 바꾸었다. 


그 공간에서 책을 더 읽기 시작했고, 이렇게 글도 써보려고 노력하게 됐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많이 발전한듯하다. 여행을 다녀온 영상을 편집에 유튜브에도 업로드해보고(구독자와 조회수는 형편없다), 인스타와 브런치에 서평을 작성해보고 있다. 정말 공간이 나를 많이 바꿔준 것 같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책은 건축가가 바라보는 우리 ‘생활’의 여러 단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들과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교도소 같은 공간의 학교에서는 창의적인 학생이 자랄 수 없다’는 이야기와 ‘개방형 사옥이 직원을 창의적으로 만든다’는 이야기, ‘공간을 공유하는 공원이 부족해 카페가 성장한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공간의 중요성과 그 공간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의 공간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뉴욕의 1인 가구와 서울의 1인 가구는 모두 좁은 집에 살고 있지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의 차이가 있다. 집 크기 아니라,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의 크기이다. 뉴욕에 사는 1인 가구는 좁은 집에 나와 공원을 향유할 수 있지만, 우리는 작정을 하고 나와야 큰 공원에 갈 수 있다. 그리고 공원들 간의 거리도 넓어 연속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서울의 1인 가구가 자주 갈 수 있는 대체 공간이 발전하는데, 그게 ‘카페’이다. 스타벅스가 대표적일 텐데 친구와 이야기할 때나 개인적 공간이 필요할 때, 심지어 책을 읽을 때도 카페를 간다. 우리 주변에 유독 많은 카페들과 유독 없는 공원의 연관성을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사례는 실내공간에서 실외로, 도심 중심에서 골목으로 바뀐 트렌드이다. 아파트가 우리 주택의 일상을 대변하기 전에는 대부분 주택에서 거주했다. 마천루 같은 아파트는 비를 하기도 좋고, 생활하기도 편리해 모두가 선망하는 주거 형태였다. 코엑스 같은 대형 쇼핑몰은 모든 곳이 실내로 이어지는 환상의 공간이었고, 사람들을 그곳으로 모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대형 쇼핑몰이 흔해진 지금에 와서는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문명이 생기기 전 본디 인간은 자연에서 살아가게끔 DNA가 진화되어왔다. 인간은 실내보다는 실외를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실외로, 골목으로, 경리단길, 망리단길, 을지로 골목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건축가 유현준이 가진 세계관은 참 공감이 많이 간다. 세계를 어떻게 보든 정답은 없겠지만 작가의 세계관은 건강하고 통찰력이 깊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답게 세상을 건축과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어느 분야에나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보편적 가치관을 말하고 있다. 책을 읽는 시간 동안 훌륭한 가치관을 지닌 건축가 선생님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어떤 분야에 상관없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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