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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n Mun Feb 06. 2019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내의 눈물 때문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게 된 계기는 아내의 눈물 때문이었다.


두 달 전 어느 일요일 저녁, 아내와 나는 망원동에 책을 읽으러 갔다. 그날 아내가 가져간 책은 82년생 김지영이었다. 난 어느 때처럼 평범한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함께 책을 읽고 있던 아내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라고 나는 물었고, “아니 뭔가 눈물이 나네”라고 대답했다. 그 뒤로 아내는 책에 대해 설명을 해줬고, 나중에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다. 눈물이 난 걸까?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지영 씨는 8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그 이름이 ‘지영’이다.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전업주부인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위로는 언니 한 명과, 아래로는 남동생이 한 명 있었다. 그야말로 지영 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아이였다. 그리고 평범한 경험들을 겪었다. 원래대로라면 태어났어야 할 여동생은 낙태를 당했고, 식사 때는 아빠, 남동생, 할머니 순으로 밥을 퍼주었다. 국민학교에선 남학생이 앞 번호를 배정받았고, 중학교 때는 여학생의 복장 규정이 남학생보다 심했으며, 고등학교에서는 짝사랑과 스토킹을 오해하는 남학생 때문에 남성 공포증이 생기기도 했다. 대학교 때는 동호회 남자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남직원 선호로 취업에서 차별을 당했다.

 

현재 이 책은 화제의 중심에 있다. 출간 2년 만에 100만 부가 판매됐다. 이는 2009년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9년 만에 100만 부를 넘어선 한국소설 기록이다. 2017년에는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했고, 최근엔 일본에서 출간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로도 곧 제작될 예정인데 주인공은 정유미 씨가, 주인공의 남편 역엔 공유 씨가 맡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의 입문서로 자주 추천되는 책이다. 그럼 화제성만큼이나 비판과 논란도 적지 않다. 여성의 삶을 표준화함에 따라 생길 수 있는 일반화의 오류, 페미니즘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다 보니 다소 떨어지는 문학성, 남녀 간의 대립을 공고화 했다는 문제점 등 끊임없는 논란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화제의 중심이 된 이유이다. 비판가들이 어떤 평론을 하든 남녀 갈등을 심화시키는 문제점을 야기하든 82년생 김지영은 20~30대 여성들에게 주로 읽히고 있고, 그리고 그들은 지영 씨의 경험에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82년 김지영이 겪은 사건들을 100%로 경험한 사람은 드물겠지만, 일부를 겪은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지 않을까? 82년생들이 겪은 세상보다 5년 나아진 세상에 살고 있는 87년생인 나의 주변 지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중학생 때 옆 학교 남자아이가 밤늦게까지 집 앞까지 따라와 무서웠다는 고등학교 동창, 취업시즌에 남학우의 취업률이 더 좋아 좌절했던 대학 동기, 고등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고취를 위해 여성의 발목양말을 규제한 교장선생님(물론 1학년 때까지만 이지만), 바바리맨을 만났다는 회사 동기 등 수많은 지영 씨가 내 주변에도 살고 있었다.

 

체험과 공감은 다르다. 나 또한 수많은 차별을 목격했지만 크게 공감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바뀌고 있는 세상에 적응하는 정도였다. 지금도 수많은 미투 사건이 있고, 사회적 논의가 있으며, 또 반대로 역차별에 대한 논의도 있다. 누가 나쁘고 틀리다 할 수 없는 문제들도 많지만, 이런 공감과 대화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나아질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지막으로 82년생 김지영이 남성들에게 본인들이 느끼지 못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은 내 아내는 눈물을 흘렸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하지만 없을 확률이 매우 높은) 미래의 내 딸은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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