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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 Feb 02. 2024

선을 지키는 여자

6.  역겨운 아가리

나는 선을 지키는 여자. 오전 미팅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조수석에 엄마를 모시고 미팅 장소로 출발한다. 사업 초기부터 같이 다니던 두나는 조카가 생긴 이후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에 몇 달 전부터 출장길에 두나 대신 엄마가 그 자리를 채워 주셨다. 왜냐하면 난 이때 만삭의 몸으로 배가 남산만 했기 때문이었다.

평생 우리를 위해 주야로 일하신 엄마는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신 적이 없었다. 지방 미팅을 갈 때마다 ‘엄마 여기는 가봤어? 여기는? 엄마 안 가 본 곳이면 같이 가요’라고 물으면, 엄마는 신혼여행 때 한복 입고 경주에 간 거 말고는 아무 데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언젠가부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마 내일 지방 가니까 오전 6시까지 준비하세요’ 하는 식으로 통보 전화를 드린다. 비록 여행은 아니지만 톨게이트를 지난다는 거,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거, 휴게소 우동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목적지는 남해. 부산에서 매일 바다를 보며 살고 있지만 또 다른 바다를 간다는 마음에 소풍 가는 것 같아 가는 내내 관광버스처럼 신나는 음악도 틀고, 항상 휴게소에 들러 핫바도 하나씩 물며 기쁜 마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현장을 다녔지만, 이번 현장은 손에 꼽힐 만큼 경치 좋은 곳에 깔끔한 컨테이너 가건물들이 남해 바다를 보며 디귿자 형태로 반듯하게 앉아 있다. 내가 미팅하는 동안 엄마가 계실 곳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현장 주변 환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엄마는 현장 옆 바닷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금방 마칠거라 생각하고 웃으며 ‘엄마 나 잘하고 올게.’하는 눈빛을 보내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외진 곳에 있는 현장은 공사가 준비 단계라 방문하는 외부인은 거의 없다. 그래서 항상 여러 명의 남자와 나 혼자 미팅한다. 오늘은 하이힐에 원피스는 아니지만 묵직하고 당당하게 미팅 테이블에 앉았다. 처음 만나는 자리지만 서로의 근황을 시작으로 나의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설명하며 미팅이 끝나갈 때쯤, 마르고 키가 큰 젊은 감독관이 인사도 없이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그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날 위아래로 훑더니     


“사장님, 그 몸으로 이런 곳에 다니시면 됩니까?” 하는 게 아닌가?     


이 인간은 임산부인 나를 걱정해 주는 걸까? 걱정하는 척하는 걸까? 순간 헷갈렸지만, 이 인간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정말 네가지 없게 인기척도 없이 들어올 때부터 느낌이 쏴 했지만,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당장 일어나 그 담배를 잡아채서 묵직한 운동화로 그 인간의 얼굴이라 생각하며 밟아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선을 지키는 우아한 여자인지라 조심히 담배를 꺼주기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며 되려 연기를 몇 번 더 뿜어댄 후 담배를 끄는 것이다. 분명 날 배려해서 피던 담배를 끄는 게 아닌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꺼진 담배를 보고 그의 질문에 답을 하려 했으나 담배 냄새 가득한 역겨운 아가리를 벌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나의 터질 듯이 부른 배를 보고 공기 안 좋은 가건물에 유해 물질이 가득한 이런 곳에 왜 왔냐는, 정말 걱정처럼 들리는 멘트를 이어갔다. 하지만 내가 앉아있는 환경보다 내 앞에서 피워대는 너님의 담배가 100배는 더 나쁘다는 거 알고는 있니?     


“이 현장만 끝나면 병원 가서 아이를 출산할 예정입니다”하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날은 로순이(태명)를 만날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날이었다. 다른 친구들 결혼할 나이에 나는 사업을 시작해서 회사를 키워 나가느라 세월을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많이 늦은 나이인 30중반즈음 이렇게 사업에만 올인하다간 50살엔 노숙자로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혼했고 많이 늦었지만 귀하게 갖게 된 아이이다. 아이가 생겼지만 내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은 없었다. 일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임산부의 몸으로 장거리 운전을 해도 되는지, 상대방과의 미팅에 실례가 되진 않는지, 고민을 수도 없이 했다. 돈은 벌어야 하고 나를 찾아주는 이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다행히 그 인간을 만나기 전까지는 불편한 내색 없이 배려해 준 현장 사람들 덕분에 힘을 내서 마치 내가 임산부가 아닌 것처럼 일할 수 있었다.     


업무 얘기는 모두 마친 상태라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어, 서둘러 인사를 하고 웃으며 나왔지만 내 마음은 내 몸만큼이나 무겁다. 만삭의 딸이 왕복 5시간씩 운전해서 일하는 것도 엄마는 마음이 편치 않으실 텐데, 혹시 일이 잘 안된 건 아닌가 오해하실 표정을 보이기가 싫어 후다닥 운전석에 앉아서 밝은 표정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를 나를 기다리는 동안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처럼 바닷가에서 해초들을 듬뿍 뜯어 담아 오셨다. 나는 차마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당당하다. 출산율이 저조해져서 국가가 위태로운 현재. 임산부들은 더 대접받아야 하고 나는 임산부이면서 경제활동까지 끝까지 하지 않았나.          


대한민국의 임산부들 모두 존경하고 건강하게 순산하시길 바라고, 임산부 앞에서 담배 피우는 몰지각한 인간들은 이제 그만 사라져 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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