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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 Jan 26. 2024

선을 지키는 여자

5.  가지 가지

나는 선을 지키는 여자.

내 인생에 반려동물은 없다는 것도 내 선 중 하나. 여기 있는 인간들이 미친 건지, 내가 미친 건지 구분하기 힘든 직장생활에 개인 사업까지 하는 N잡러 게다가 병원에서도 정신병자로 분류하는 사춘기 중2병에 걸린 딸까지 있는 나에게 반려동물이라니. 이 선만은 휴전선보다 더 명확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느 날 아빠가 갈색 치와와 한 마리를 데리고 온 적이 있다. 그 치와와 한 마리 때문에 아빠를 제외한 모든 식구가 기겁하고 도망을 다녔던 기억. 그땐 강아지는 모두 사람을 문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귀여운 치와와는 하룻밤만에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 지금은 강아지가 무섭지도 않고 사람을 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 내가 강아지를 물어버릴 것 같다. 내 공간도 부족한 이 집에 강아지라니?

     

치와와 사건 이후, 어릴 땐 반려동물이 있는 친구 집에는 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강아지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반려동물은 항상 나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내가 반려동물이 있는 집을 부득이하게 방문해야 할 때면 그 집 반려동물은 어딘가에 갇혀있던지, 아니면 내가 소파 위에서 다리를 내리고 있지 않던지 해야 했고 이사를 위해 집을 보러 다닐 때도 반려동물이 있는 집은 아예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반려동물 특유의 냄새를 굳이 맡고 싶지도 않았기에.   

  

동물을 사람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살뜰히 챙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사람한테나 저렇게 하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동물 자체를 싫어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 반려견 ‘가지’가 누워있다. 가지가 우리 집에 오게 된 이유는 하나뿐인 딸 때문이었다. 착하고 말 잘 듣던 딸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난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마음이었다. 결국 상담센터를 찾았고 상담 선생님께서 반려견이 사춘기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권유해 주셨다. 나에겐 솔루션이 아니라 쏠림이었다. 정신병과 동급인 사춘기 중2병 환자도 감당이 안 되고 있는데 반려견을 키워보라고?? 왜? 그냥 나한테 집을 나가라고 하시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 또한 한 아이의 엄마인 것을. 이 선만은 반드시 지킨다는 내 신념은 강했지만 이번만은 아이를 위해 이 선을 넘어보려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고 정신병자와 동급인 이 사춘기 환자를 이길 자신은 더더욱 없다. 그리고 이즈음에 딸아이의 친구들 집에도 반려동물이 하나둘씩 입양되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귀여운 비숑, 구름이라는 양쪽 눈 색깔이 다른 고양이, 햄씨라는 햄스터까지. 딸아이 친구들 집에 새 가족이 생기고 있었다.

     

남편과 딸의 성화에 못 이겨 구경만 가보자고 갔다가 결국 검은색 토이푸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500그램도 채 안 되는 강아지지만 갑자기 어릴 적 트라우마가 떠오르며 케이지에서 꺼내 놓으면 달려와 날 물어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대소변은 이제 어떻게 치우지? 목욕은? 산책은? 게다가 아프면 병원비는?? 마치 난 초보 엄마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오만가지 걱정으로 잠도 설쳤다.     


눈을 뜨니 꿈이었으면 하는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배변판은 엉망이었고 역겨운 사료 냄새 때문에 근처도 가기 힘들었다. 반려견을 입양하자고 한 적들에게 빨리 배변 패드를 정리하고 배변판을 씻으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싫어하는 강아지를 딸 때문에 입양했으니, 딸은 내 눈치를 보며 배변판을 화장실로 가지고 가서 씻으려는 순간     


난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면서 “야!!! 그걸 세면대에 올리면 어떻게 해? 강아지 배설물이 다 묻잖아!!!” 라고, 잡아먹을 듯이 딸을 쏘아보았다.     


순간 놀라 머뭇거리던 딸이 배변판을 욕조로 옮겨 샤워기로 씻으려 하자 난 또 한 번 더 고함을 지르며 “그러면 오줌이 욕조에 다 묻잖아!”하고 연달아 소리를 질렀다. 설상가상으로 신랑은 어린 강아지가 너무 떤다며 둘째 날부터 데리고 자자는 게 아닌가?

나는 당장이라도 이혼할 기세로 강아지와 나 둘 중 양자택일을 하라고 했다. 신랑은 코웃음을 치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무시했다. 나는 정말 개무시 당했다.


그런데 그렇게 미워하는 나에게 강아지가 자꾸만 온다. 물릴 거 같아 무섭고 내 이불에 실수라도 할까 봐 불안한데 이 아이도 이 집에 엄마가 누군지 아는 걸까? 나에게 오는 강아지를 신랑에게 떠넘기고 난 겨우 잠이 들었다. 잠자리가 너무 포근하다. 한겨울은 아니지만 뭔가 따뜻한 이 느낌은 난생처음이다. 행복한 꿈을 꾼 것처럼 기분 좋게 눈을 떠보니 가지가 나의 겨드랑이 사이에서 자고 있었다. 잠들기 전까지 한걱정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따뜻함만이 내 온몸을 감싸고 있다. 추운 겨울날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생각이 난다.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함이다.     


이번 주말은 왜 이리도 길었는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나를 휀스안에서 빤히 보고 있는 가지. 나는 문득 ‘우리가 다 나가버리면 어린 강아지는 어떻게 하지?’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 외롭진 않을까? 배가 고프진 않을까? 물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국그릇으로 두 대접을 가지 집 안에 넣고 출근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모든 에너지가 온통 새로 나타난 가지라는 강아지에 대한 걱정에 쓰이고 있었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가지의 온기를 느낀 그날 이후 가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내 가슴속 깊은 곳으로 쏜살같이 훅 들어와 버렸다. 어떻게 동물을 혐오할 만큼 싫어했던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고가의 명품백보다 가벼운 가지는 나에게 무생적(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를 진정한 명품 인간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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