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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Sep 27. 2022

어렵고도 위대한 일을 겪어볼 용기를 내는 일

삶의 경험은 적나라한 나 자신을 매 순간 마주 보는 일이었다. 직접 겪지 않으면 알지 못했을 감정과 오로지 나만 알아차릴 수 있는 내밀한 생각과 부딪는 과정이었다. 그것을 스스로 인식하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겪고 있었다.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삶의 자국이 되어 길을 내고 방향을 틀게 만든다. 경험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경험 속에 내어놓은 자기 자신을 잃는 일은 얼마나 빈번하며 얼마나 쉬운가. 그에 반해 그것을 자각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고 사는 건 원래 힘든 거라는 암묵적 동의를 했다 치더라도 인생이 왜 뜻대로 되지 않는지... 삶의 행복은 도대체 어디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인지 늘 궁금했었다. 나는 늘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갈수록 초라해져 가는 느낌과 삶의 공허함의 깊이는 무엇 때문에 더해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를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지곤 할 때면 무력감이 어느새 옆에 자리하곤 했다.




어쩌면, 매일 부딪는 삶이 괴로웠던 것은 나를 직면하는 매 순간이 불편하고 어려웠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를 인정하고 나니 그동안 이렇게 살아냈을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올라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밀려가듯 사는 삶에서 애초에 내가 정한 인생의 뜻은 없었던 것이다. 표류하듯 떠다니는 삶의 실체는 그러했다.



무언가를 겪으면 그에 대한 반응을 얻게 된다. 일상에서 겪는 아주 작은 소소한 일일지라도 때로는 그 무언가가 삶의 방향을 틀게 만들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거대한 큰일 같이 보이는 복잡한 일일지라도, 실상 겪어보면 별것 아닌 일도 다반사이다. 우습게 여길 만큼 쉬워 보이는 일은 삶을 나락으로 끌고 갈 숨은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무엇을 어떻게 겪을지에 대한 태도가 경험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종종 내가 겪어야 할 오늘이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내가 잘 겪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과 초조함은 무언가를 시도하고 행동해 나가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당당하게 올곧게 '마이웨이'를 걸으며 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궁금했다. 마이웨이를 걷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직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일, 날뛰는 에고의 허영심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만의 중심을 지닐 수 있는 것, 결국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경험을 통해 똑바로 들여다볼 '용기'에 답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의 밑바닥에는 자기 자신의 가치로움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자신을 너그러이 바라봐줄 '자기 사랑'이 있기에 마이웨이가 가능한 것이었다. 살아내야 한다면 나도 이리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경할 삶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비로소 내 삶에서 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작은 일처럼 보이는 일에서부터 스스로 작은 용기를 내어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가장 도망치고 싶었던 내밀한 그곳을,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의 더미를 거울처럼 비추는 경험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직면해 보는 어렵고도 위대한 일을 겪어볼 용기를 내는 일.


가까스로 내어본 용기가 자기 자신을 할퀸다면 아파하고 다독거려줄 수 있기를, 그 상처를 감싸 안아주어 다음번에도 용기내야 할 그 순간에 겁먹지 않고 섣불리 포기하지 않기를...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뒤처지는 것 같은 일도 결국에는 삶의 '나아감'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계속되는 삶 속에 내가 놓여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면 주저함으로 보이는 그 '멈춤'의 순간도 삶의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조금 더 편히 그 멈춤의 순간에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건이 주는 경험을 '사건'에 국한하여 매달려있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 경험을 통해 나의 어떤 얼굴을 보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그게 못난 나일지라도, 그게 미운 나일 지라도... 그렇게 자기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할 수 있기를... 그게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거짓된 나 자신을 꾸며대는 일을 위해 삶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이 모든 것을 따듯한 마음으로 감싸 안아주는 내 존재 전체를 바라보는 내면의 눈과 마주하기를. 삶의 모든 경험은 세상에서 비춰진 자기 자신을 보게 하고, 자신이 본 외부의 자기와 내면의 눈이 바라보는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좁혀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궁극의 합일을 향해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겪음’에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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