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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Apr 12. 2023

기념일

230412, 22:33

조용히, 홀로 축하하는 그런 날도 있다.


말없는 대화를 나누고,

내밀한 감정들을 투명히 내어놓고,

스스로 보내는 축하를 기념하는 그런 때.


포기하지 않은 것

스스로를 나무라지 않은 것

수고했다 토닥여줄 수 있는 것

나를 미워하지 않은 것

나를 믿어주는 것

그 모든 것들을.


그려왔던 오늘의 모양은 아니었지만,

찻잔에 김이 폭폭 나는 물을 붓고

물바람 속을 떠다니는 찻잎들의

축하공연을 보는 호사를 누린다.


오늘이라는 날의 OST가 되어줄 음악을 고르고

아무 말도 없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작은 불빛 하나 켜놓고

돌아가는 시계 위로 지나온 시간을 걸어본다.


그 시간들을 걸어서 오늘에 서있는 나를

축하하는  그런 날

안아주고 싶은 날


고요 속에서 빛나는 환희

침묵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소란함

정적 속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토닥임은

삶의 분절을 만든다


딛고 나아가는 오늘.

기억하고 싶은 그런 날.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런 날.

변곡점이 아닌 전환점이 되어주는 그런 날.


오늘을 무척이나 축하하고 싶다.

오늘을 무척이나 기억하고 싶다.

기념일은 그런 것.


침묵 속의 황홀한 호사를

어둠 속에서 발견한 찬란함을

고요 속에서 길어 올린 여린 기억들을,

보내주어야 할 것들은 보내고

마음속에 두어야 할 것은 두라는

마음이 보내는 축사를 기억하기로 하고


그렇게 오늘을 맺는 밤.


23041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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