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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May 18. 2022

나는 더 이상 평범을 꿈꾸지 않는다

자기 자신으로서 사는 사치를 허용하기

요 근래 '평범'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내 신경을 건들기 시작하더니 '평범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내내 따라다닌다. 평범한 것과 무난한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나의 호불호 속에서 평범함과 무난함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나는 평범과 무난함이 내게 부여한 개인적인 정의와 그 속성들의 어떤 면을 좋아했던가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무엇을 평범하다 말하는가



평범한 사람, 평범한 일상, 평범한 스타일, 평범한 직업 …


어떤 명사에 '평범한'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순간 그 단어가 가진 고유의 색이 바래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을 떠올려보면, 인파로 가득 차있는 길거리 속에서 무채색의 옷을 입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거리에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내가 가진 평범한 사람의 인상이었다. 평범함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여있는 존재들의 특징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특성이 없었으며, 어딜 가도 있을법하기에 없어도 그만인 느낌이었다.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흔한 존재들을 묶어서 '평범'이라는 단어 속에 밀어 넣은 것일까?


누군가에게 기억되지도 않을 만큼 흔하고 특성 없는 '평범함'을 나는 왜 오랫동안 내가 그려내야 할 삶의 전형이라고 생각했었을까 의아해졌다. 분명 평범함의 이러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평범함을 꿈꾸게 했던 요소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범함을 꿈꾸는 사람



튀지 말라고 배웠다. 무난히 섞여서 고만고만하게 그렇게 흘러가듯 사는 게 최고라고 주변의 어른들은 내게 말했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이니 자꾸 삶에 딴지도 걸지 말라고 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 게 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평범한 삶을 목표로 하여 매일을 살아가는 평범함을 꿈꾸는 내가 있었다.  


어찌하여 평범함이 삶의 목표가 되었을까 싶어 되짚어보다가, 평범함을 갈구하는 그 당시의 나는 나 스스로를 이미 평범하지 않다고 여겼다는 말이 아닌가? 이상했다. 평범을 꿈꾸는 나 자신을 제삼자가 본다면 아주 지극히 평범한 인생이라고 말해주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그저 하나의 평범한 인간이라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스스로를 평범하지 않다 여겼던 이유는 나 자신이 평균 이하의 삶 속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평범함이란 삶의 수준을 하나의 선으로 평균을 갈라놓고, 그 선상을 살짝살짝 오르락내리락하며 사는 삶과 같이 여겼다. 그 선위에서 머무르는 순간을 마치 내가 아주 잘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꿈꿨던 대로 남들처럼 사는 내 모습에 스스로 대견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삶은 나의 불안을 잠재워주긴 했지만 불안의 일시적 억누름에 불과했고, 행복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삶에 활기도 없는 불안의 요소가 배제된 일상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행복이라는 감정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을 '평범해'라고 인상을 평하면 딱 그 느낌이었다. 중간은 가겠구나. 그런데 그 중간이라는 것의 기준이 참으로 오묘하고 실체가 없었다. '중간'이라는 평가 요소는 사람들마다 달랐으며 누군가에게는 중간 정도 되는 항목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악이 되기도 했다. 절대적인 중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평범함이라는 기준 역시 절대적일 수 없으며 나에게 느껴지는 평범함이 타인에게는 특이함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평범함이라는 가치는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보편적인 합의를 이뤄내는 '평범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과연 그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어쩌면 평범한 삶이라고 인식된 이미지는 여기저기서 흔히 보는 삶의 모습에 사람들의 개별적인 욕망이 더해져 있는, 마치 짜깁기한듯한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평범의 기준을 세밀히 들여다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주관적이었다. 내가 추구한 '평범함' 역시 나의 욕망이 반영된 개인적으로 원했던 삶의 모습에 불과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평범함'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일까...?




평범함이라는 안전지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충분히 당혹스럽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지도 말하기 어려운데, 앞으로 어찌 살고 싶냐는 질문은 현재의 삶을 바라봄과 동시에 앞으로의 삶도 내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뿐만 아니라 타인이 나에 대해 무엇을 물어볼 때 불안감이 엄습하면 가장 둘러대기 쉬운 대답도 '평범'한 그 무엇이다.  


평범함이 일종의 보호색인 것 마냥, 그 경계 없는 모호함에 자기 자신을 끼워 넣으면 묘한 안도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평범함을 외치는 사람들은 세상의 수많은 호불호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삶에 대한 스스로의 호불호가 명확히 없는 상태에서 혹시 자신의 취향을 내비쳤다가 비난받거나 무시받을 일말의 가능성으로부터 '평범함'은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준다. 평범함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사람들의 안전지대의 특성을 대신하는 말일까?


돌이켜보면 평범함을 요구하는 삶의 영역은 나의 불안이 반영된 부분이었다. 내가 자신 있어하고 호불호가 명확한 부분에서 나는 평범함과 타협하지 않았었다. 평범한 삶을 원한다고 말은 하고 있었어도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었다는 걸 발견했다. 평범함을 요구하는 삶의 영역은 따로 있었다.


자기자신을 모를 때, 자신감이 없을 때, 상처받기 싫을 때, 삶의 기준이 없을 때... 평범함이라는 안전지대로 삶을 이끌었다.




아주 못나지 않았다는 말인 동시에 아주 특출 나지도 않다는 말



사람은 다 알고 보면 특이하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이 말은 어쩌면 누군가에게서 평범함이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그 사람의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는 고유의 그 무엇이 있다는 말의 대변이 아닐까 싶다. 한 사람의 열 손가락의 지문도 각기 다를진대, 사람들을 평범함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두기엔 우리는 너무나 개별적으로 독보적인 그 무엇이 있는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평범하게 사는 삶의 전형이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사는 게 재미있느냐고, 사는 게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고. 평범함으로 버무려진 삶 속에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데 왜 나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라고 수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었다. 나는 평범하게 사는 게 삶의 목표였었다. 남들처럼 사는 대로 살아보면 행복해질 거라는 꿈을 꿨다.  


그러나 그때는 왜 몰랐을까. 평범하다고 생각하며 추구했던 개별의 삶의 모습 속에는 그 평범함을 자아내는 삶의 주인공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삶의 주인공이 어느 누가 된다 하여도 똑같은 삶을 살아낼 수 없다는 걸 몰랐다. 평범함으로 그려진 삶 마저도 개별의 고유함이 묻어있기에 사실 들춰보면 세상에 평범한 것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누가 나 자신을 평범하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었다면, 지금은 이것 하나만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들 사는 것처럼 말고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평범함이라는 바운더리를 스스로 벗어나고 싶다고.  


그렇다고 하여 특이하게 살고 말 것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나를 괴짜라고 칭한다 해도 그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특이'라는 말속에는 모양이 다르고 드물다는 뜻이 있다. 내가 특이한 사람이라고 치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드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특이함이라는 말속에는 스페셜함이 담겨있었다. 나는 평범한 나보다 특이한 나에 더 끌린다. 나를 무엇으로 특이하게 만들 것인지가 나의 인생의 숙제다. 마이웨이를 걷다 보면 특이해질 수밖에 없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이고, 나의 고유함이니까.




우리 모두는 각자 빛나는 고유하고 독보적인 존재



평범함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들여다보면 어느 누구도 평범하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고유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말하고 싶다. 평범한 삶에 오래도록 머물다 보면 그 지점이 나에게 편안함을 줄 수도 있고 쉬어갈 수 있는 쉼표가 될 수도 있지만, 삶에서 활기를 더해 줄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욕망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색이 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서 흘러가듯 살아지는 삶 대신에, 작은 것부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그 취향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작은 시도들을 하다 보면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과 동시에 자기 스스로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나만의 고유한 그 무엇, 나의 시그니쳐가 삶에 새겨지는 경험들을 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모든 이들은 원래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평범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모두의 다른 특이함을 너그러이 바라보고, 자기 자신으로서 삶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내 안의 숨은 보석을 찾는 보물 찾기와 다름없다 생각한다.


중간이라도 하는 '평범'함을 중간이라도 되는 '사람'으로 동일시하는 착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누구도 누군가를 평가할 수 없다. 누군가의 평가는 하나의 필터를 거친 생각이자 하나의 의견에 불과할 뿐이다. 중간만 가도 마땅한 보통의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고유함을 지니고 살아간다.



나는 평범한 것 대신에, 특이한 그 무엇으로 살고 싶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사치를 누리고 살고 싶다.



난 더 이상 평범함을 꿈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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