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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Aug 14. 2022

사랑의 모양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의 형태는 다양했다. 무엇이 사랑인지도 모른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던 순진한 시절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그럴  있듯이, 사랑은 어쩌면 미숙했던 청춘의  단면에 대한 묘사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한 사람을 축으로 돌고 있다는 신비 속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니라 그가 사는 세상의 우주로 나를 데려갔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생각날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했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좋은 것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마음은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기도 했다. 그냥 아무 특별할 일 없었던 날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아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구멍 난 마음을 메워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생애 힘든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면, 기꺼이 그 길을 함께 걸어 나가줄 그런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자신을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혼자서는 겪을 수 없는 이러한 감정들이 내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다가왔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사랑인지 아닌지는 그때로서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난날의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진정으로 사랑을 주었던 사람이었을까 되새겨본다. 돌아보면 나는 이런 사람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어떤 사랑은 아프게 남았고, 어떤 사랑은 미안하게 남았으며, 어떤 사랑은 배신감으로 남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여러 가지 모양의 사랑은 나에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엮을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나의 지난날들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사랑이었을까, 사랑의 모양을 닮은 그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니었을까.



이상하게도 요즘은 행복한 사랑의 장면들을 볼 때 울컥 눈물이 나오곤 한다. 상실감과 더불어서 부러움도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그런 모습을 동경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설령 내가 사랑이 가진 아주 작은 한 단면을 본 것이라고 할지라도 마치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곤 한다.


과연 나는 저런 사랑의 모습을 다시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인지... 잡아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했고, 그러고 나면 내 인생에서 사랑은 부차적인 그 무엇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 오래 두고 보아도 어여쁠 그런 마음과 아량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사랑'속에 있는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을 만큼 난 순진하고 뭘 몰랐던 것 같다.



지난날 나의 사랑의 정의와 지금의 사랑의 정의는 어떻게 다를까.


지금으로서는 내게 사랑은 아프게 남아버렸다. 결혼이라는 것을 '사랑의 완성'이라는 개념과 분리하여 본다면 이것은 서로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더 이상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되는 제한과 자유로움이 동시에 오는 일, 생사고락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삶의 동지가 생긴다는 것, 한 인간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대부분 상당히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기도 한다), 일상의 소소함을 나눌 누군가가 늘 곁에 있다는 것.


지나고 나니 드는 생각들은, 상대방의 진면목을 보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진면목을 자신이 알아야 했으며,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시작점에 두 사람을 놓게 하는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여 삶을 함께 걸어 나가는 여정을 함께하는 서약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결혼'이 가진 환상을 좇아 그저 그 길을 걸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결혼'을 내 삶을 구제할 탈출구로 생각하면 안 됐었다. 외부에서 오는 자유함은 이내 곧 소멸될 그 무엇에 불과하다는 걸 몰랐다. 삶의 공허함을 그것들로 아무리 채워 넣으려 해도 채워질 수 없다는 걸 어린 날의 나는 몰랐다. 그렇지만 그때의 어리고 미숙한 나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의 나에게 최선의 선택을 나 스스로 했으리라 믿어주고 싶다. 진심으로.



폭풍 같은 시간들을 여전히 겪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괜찮지 않기도 하다. 괜찮은 날엔 감사하게 생각하고 괜찮지 않은 날에는 '지금의 나는 당연히 괜찮기 힘들지'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던지며 하루를 겪어나간다. 다시 내일이 오면 내일은 괜찮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안 괜찮을 수도 있지만... 이러하나 저러하나 삶은 지속되니 말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여부는 나의 소관이 아니므로 오늘의 나를 받아들인다.



유독 오늘 하루의 이러쿵 저러쿵을 늘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슬픔이자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더 이상 나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밥은 무엇을 먹었는지 물어봐줄 사람이 없다는 게 꽤나 서럽기도 하다(그게 뭐라고...).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마음 놓고 진심으로 행복해 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용기를 냈다는 그 마음 하나에 스스로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이 길을 가는 여정 중에 내가 나 자신에게 쏟아붓는 사랑이든, 타인이 내게 줄 사랑이든 그 길목에는 사랑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하다. 어떤 모양을 하고 있든지, 그게 사랑이라는 걸 내가 알아봐 주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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