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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Aug 19. 2022

바람 속 가을 한 방울

바람에 가을이 한 방울씩 섞여 불어온다. 뜨거웠던 열기는 가을이 미리 보내 놓은 공기에 희석되어 매일 조금씩 물러나고 있다.


방안의 온도계는 더 이상 '30'이란 숫자를 넘기지 않는다. 더 이상 에어컨을 틀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열기가 지나간 자리에 잠시 머무를 가을 역시 제 자리를 겨울에게 내어줄 것이다. 그리고 시린 바람이 불어와 잔뜩 웅크리고 다니는 날에 우리는 모두 온화한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올 것을 의심 없이 믿으면서. 그리고 봄은 오고야 만다.



한 번도 계절의 순환을 벗어나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 계절이 주는 인상은 매년 새롭다. 특히 이번 여름은 더욱 그러했다.


불이 난 듯했던 마음이 내는 열기를 나는 더위 속에 감춰두었었다.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 속에 있으면 나 홀로 불덩어리가 된 것만 같아서 에어컨을 켜 싫었다. 바깥세상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는 일은 상대적으로 내면의 열기를 무뎌지게 만들어 주었다. 홀로 괴로울 고집을 부리며 그렇게 여름을 버텨냈다. 내게 벌어진 일을 버텨내기에 여름은 참으로 적절한 계절이었다.



6월, 7월 그리고 8월...



여름의 주기와 나의 인생의 주기가 맞물려 돌아갔다. 이제 여름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가고 가을이 오고 있어서일까.  내 마음속에 들끓었던 분노들 열기 조금씩 식어감을 느낀다. 더 이상 뜨거워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하면 차츰 식어듯, 내 마음도 계절도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 앞에 서 있음을 느낀다.



순환하며 약동하는 것들의 본질은 한 지점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쉬지 않고 흘러야 강물인 것처럼, 멈추지 않고 불어야 바람인 것처럼... 살아있는 삶의 본질적 속성은 '변화'에 있는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영속되는 행복과 기쁨이 있다면 그것의 본질을 잃은 것은 아닌지, 끝나지 않는 슬픔과 고통이 있다면 그것 역시 그 모습은 슬픔과 고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삶도 하나의 순환이라 놓고 본다면, 그렇게 오르락내리락 삶의 파도를 겪어보는 게 인생살이인가 싶기도 하다.


우리에겐 늘 오늘이라는 지금 이 순간에 놓여있음과 동시에 내일이라는 파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다른곳으로 데려다놓는다. 그리고 그 파도를 겪어내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변화를 겪는다.



잠들기 전 선풍기를 켤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는 걸 보니 계절의 경계에 있음을 실감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말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말까 고민하는 그 순간어쩌면 자신의 삶의 계절의 경계에 진입했다는 힌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 잠시 멈춰 세우고 돌아볼 기회이다.



너무나 내게 뜨거웠던, 열병과 같이 느껴졌던 그 계절이 이제 지나가나 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 속에서 가을이 여기 오고 있노라고 또다시 말해주는 것만 같다.



뜨거웠던 여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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