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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재손금 Oct 26. 2024

나이트클럽 소방 점검기

밤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긴장

친구야, 들어봐.

언젠가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나이트클럽 화재로 무려 230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어.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충격적인 뉴스일 수도 있지만, 우리 소방관들에겐 그 뉴스가 곧바로 업무로 이어지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고라 하더라도 혹시 모를 비슷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전국 소방관서 관내에 있는 나이트클럽 화재 안전 점검 지시가 떨어진 거야.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멀리서 발생한 재난이 우리에게도 실질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걸 느껴.


내가 근무하는 소방서 관할에는 (지금도 워낙 성업 중인) 두 곳의 나이트클럽이 있는데, 편의상 하나는 ‘동양관’, 다른 하나는 ‘서양관’이라고 부를게. 동양관은 대형 건물 지하 1층에, 서양관은 독립된 단독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어. 게다가 두 클럽은 대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지.


먼저 동양관에 가서 소방 점검을 했는데, 자잘한 문제들이 꽤 있었어. 고장 난 설비도 눈에 띄었고,

수리가 필요한 부분도 많았지. 그래서 일정 기간을 주고 고치라는 '시정보완명령 행정처분'을 내렸어. 

반면 서양관은 특별히 지적할 사항이 없었거든. 그랬더니 동양관 관계자들이 우리 소방서가 서양관을 편애한다며 민원을 넣는 거야. 알고 보니 이 둘은 평소에도 대로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더라고. 당시 서양관은 손님들로 북적이는 반면, 동양관은 상대적으로 한산했으니까 말이야.


결국 동양관의 민원 때문에 서양관을 다시 점검하러 가게 됐어. 클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새벽까지 영업을 하니까 오후 4시쯤 약속을 잡고 찾아갔지. 그런데 막상 가보니 ‘관계자’라면서 나온 사람들이 무려 20~30명이나 되더라고. 동양관에선 보통 한두 명만 나왔고, 서양관도 첫 점검 때는 그랬는데, 이날은 유난히 많이 나와서 살짝 긴장됐지.


게다가 분위기가 묘했어. 서양관 관계자들이 '왜 또 점검을 나왔냐'라고 묻더니, '혹시 동양관 놈들이 민원을 찔렀냐'며 진지하게 나를 추궁하는 거야. 그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마치 영화에서 조폭들끼리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씬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순간 나도 살짝 쫄아서 식은땀이 났지.


그렇지만 내가 누구냐, 소방관 아닌가! 큰소리로 "민원이 들어온 건 사실이지만, 민원인에 대해 말해줄 순 없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공무 집행 중인데, 혹시라도 위협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면 절차대로 처리할 겁니다." 하고 한 마디 내뱉었지. 그러자 약간 눈치 보는 표정이더니 이내 조용해지고 바로 협조하기 시작하는 거야. 속으로 ‘영화에선 이런 대사 치면 뒤끝이 남는데...’ 싶으면서도 은근 뿌듯했지.


이렇게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무사히 점검을 이어갔어.(조금 괘씸해서 더 꼼꼼히 점검했던 것 같아.)

1층 스테이지부터 룸 30개 정도를 하나하나 돌아가며 확인했지. 룸 점검할 때마다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적극적으로 설명을 덧붙였고, ‘이상 없음’ 판정이 나오면 환호성까지 지르더라고.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그냥 웨이터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단순한 종업원이 아니었어. 각 룸을 소유한 사람들이더라고.


이 나이트클럽의 운영 방식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어. 마치 쇼핑몰의 개별 상점들처럼 각 룸을 웨이터들이 임대해 수익을 나누는 시스템이었지. 즉, 전체 나이트클럽의 소유자가 있고, 그가 클럽 내 테이블과 룸을 웨이터들에게 빌려주는 거야. 그리고 웨이터들은 자신이 맡은 룸의 관리와 책임을 지는 구조였어. 그래서 각 룸에서 지적 사항이 나오면 그 룸을 관리하는 웨이터가 모든 걸 책임지는 식이었어.


그 사람들은 밤이 되면 룸의 책임자로서 직접 웨이터로서 일도 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보조 웨이터 3~4명을 따로 고용해 두었더라고. 본인들은 까만 조끼를, 보조 웨이터들은 빨간 조끼를 입혀서 구분을 확실히 했지. 이 시스템은 말 그대로 모든 룸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만들어서, 각 웨이터가 자기 룸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짜인 거야.


게다가 남자 손님들 사이에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려고 젊은 여성 알바생들까지 따로 고용해 두었더라고. 그 여성 알바생들은 주로 손님들과 부킹을 유도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게 그저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진행되다 보니 실제로 손님 유치에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하더라고. 철저하게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꼼수랄까. 밖에서는 절대 발설하지 말라며 비밀스럽게 알려주는데, 나도 모르게 흘린 이 비밀, 이제 와서 친구한테 털어놓게 되네.


낮에 보는 이 웨이터들은 그저 자영업 사장님들 같아서 이들이 이렇게까지 매출을 극대화하려고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했어. 밤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함께 번쩍이는 나이트클럽의 이면에는 이렇게 복잡한 수익 구조와 꼼수들이 숨어 있었던 거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그 이면에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현실이 숨어 있더라.



소방관이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재난이 우리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을 느끼며 서양관의 소방점검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어. 그 웨이터사장님들은 나중에는 이번 기회에 소방점검을 확실히 받아서 고맙다는 말까지 하더라. 나중에 밤에 지나가면서 보니깐 "안전한 서양관!! 00 소방서 소방 안전점검 합격 "이라는 플래카드도 붙었더라. 그것도 영업 홍보였겠지.

이렇게 점검을 하면서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을 엿본 기분이었어.


친구야, 우린 나이트클럽에는 가지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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