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과 전화 그리고 낯선 사람

by 다현

이제 초인종의 쓸모는 다 한 것 같다. 각종 범죄가 도사리고 있는 대도시에선 낯선 이가 누르는 초인종에 반응하지 않는 게 상식이다. 아기를 키우는 집에선 아기가 깰 수 있으니 초인종 누르기 대신 노크를 부탁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음식 배달이 보편화된 요즘엔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주문자의 집앞에 도착해도 조용히 문앞에 두고 간다. 초인종을 눌러 얼굴을 마주보고 음식을 건네는 간편함 대신, 바닥에 포장된 음식을 두고 굳이 사진을 찍어 주문자의 번호로 전송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엔 초인종이 울리면 "누구세요?"라고 반사적으로 외쳤지만 지금은 숨 죽이고 무시한다. 사적인 공간에 예정되지 않은 낯선 자의 방문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만 해당되는 사례일지도 모르지만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도 마찬가지다. 02-xxx-xxxx 또는 070-xxxx-xxxx 으로 시작하는 전화는 웬만해선 받지 않는 편이다. 보험, 대출 등의 광고전화이거나 대답하고 싶지 않은 여론조사 전화일 확률이 99.9%니까. 그렇다고 010-xxxx-xxxx으로 시작하는 번호는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업무상 개인번호로 전화 받는 일이 많은 사람이야 010 전화를 무시하면 안 되겠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다'가 철칙인 사람이다.


반응하지 않는 초인종과 받지 않는 전화. 두 가지의 공통점은 '예정되지 않은'에 있다. 찾아올 사람이 예정돼 있지 않으니 초인종에 반응하지 않고,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예정돼 있지 않으니 받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예정되지 않은 '만남'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친구와 장소와 시간을 정해 만나는, 예정된 약속이 아니라면 불특정 사람과 불특정 장소에서의 만남이 나는 부담스럽다. 흉흉한 범죄 사고 뉴스가 끊이질 않는 탓에 안전을 추구하는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근원적으로 들여다 보면 모르는 사람과의 낯선 대화가 버거운 것 같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관계를 맺고 기대하거나 실망하고 다양한 감정 소모를 겪는 일이 귀찮게 느껴진다. 아니, '귀찮다'라는 표현은 너무 편의적이다. 귀찮다기보다는 여러 층위의 감정을 겪고 그에 반응하고 대응하는 과정이 두렵다. 맞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게 두렵다.


요즘 자기 전 <돈이 아닌 운을 벌어라>라는 책을 읽고 있다. 어째서 이런 사짜(?) 냄새가 폴폴 풍기는 책을 읽고 있냐 하면, 새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원래 새해가 시작되면 안 하던 것에 도전해 보고 괜히 '전과 다른 나'가 되기 위해 무리해서 계획을 짜니까. (아침 7시 10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역시 무리한 계획의 결과다.) 아무튼 이 책은 주역의 원리로 운을 경영하는 법에 대해서 설파하는데, 전체적인 골자는 '운을 벌려면 사람을 만나라'는 것이다. 골방에 처박혀있으면(작가가 실제 사용한 표현) 운이 굴러들어오려다가도 돌아간다고 한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는 사람은 실패자(..)라고 한다.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고 약속 없는 주말 골방에 처박혀 있는 나는 큰일 났다.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하는데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게 두렵고 귀찮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집에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내향인은 운도 가질 수 없는 건가요.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서러운데 '운칠기삼'의 운도 가질 수 없다니... 이 세계는 왜 이렇게 내향인에게 박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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