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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공원 Oct 14. 2023

일 하기 싫은 날

내일을 위한 준비

 

나는 매일 아침 침대에서 책상으로 출근한다. 출퇴근 거리는 3m가 채 안 되지만 그마저도 멀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도무지 책상에 앉기 힘든 날.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책상 앞에 한 번 앉아보지도 못한 채 자책만 하다가 끝나는 날.


그날 하루의 패배감은 다음날 그다음 날로 이어져 손 쓸 수 없이 커지기도 한다. 그런 뼈아픈 경험을 몇 번인가 아니 수없이 되풀이하고서야 몇 가지 요령이 생겼는데, 그중 하나는 오늘 하려고 한 일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면, 해가 지기 전에 얼른 포기하고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해가 지면 그날 하루를 포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날 나는 ‘집안일’을 한다. 일종의 내부수리인 셈이다. 집안일도 엄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다 보면 죄책감은 사라지고 머리도 개운해진다. 먼저 방 안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과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한다. 방 안에 뒹굴고 있는 택배상자도 고이 접어 한 곳에 모으고 내친김에 쓰레기와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한다. 큼직한 것들은 치웠으니 이제 바닥을 쓸고 닦는다. 마침내 밀린 설거지까지 마치고 먼 길을 돌아 책상 앞으로 간다. 책상 위에 있는 쓰레기와 잡동사니도 방을 치우듯 하나씩 차근차근 정리한 뒤 부쩍 넓어진 책상을 깨끗이 닦는다. 그제야 책상에 앉고 싶어 진다. 갓 치운 방처럼 넓고 깨끗해진 책상에 앉아 노트나 책을 뒤적이다가 컴퓨터도 켜본다. 그러다보면 괜히 바탕화면을 정리하다가 내일 할 일을 메모장에 써두거나 간단한 사전 작업을 미리 해두기도 한다. 그렇게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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